하나님의 뜻 - 오늘 여기서 그 분을 위해, 증보판
제럴드 L. 싯처 지음, 윤종석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선악과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에덴 동산에서 모두들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유가 바로 선악과 때문이었으니까.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그 후손인 인류 전체에게도 핵폭탄보다 위험스러운 '재수없는 선악과'가 에덴 동산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을 창조하고 다시 멸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미끼였던가? 그렇다면 차라리 인간을 만들지 말던지...... 선악과의 존재는 성경의 처음부터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선악과를 좋아할 수 없다. 물론, 나도 선악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정성 들여 그린 예술 작품을 짓밟아버리는 괴팍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분명 선악과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학자들과 여러 서적들의 도움을 받아 고민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자유 의지'였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좋아하게 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유 의지로, 자신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에게 선악과는 꼭 존재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했고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뜻밖의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선악과를 파헤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분명 머리로는 선악과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하나님의 의도가 선하다고 여겼지만, 행동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다. 선악과는 옳았지만 나는 그 선악과를 없애기 위해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만 없으면 내 인생은 성공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선택을 말살시켜버리려 했다. 자유와 선택은 내게 불안의 요소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이면에는 나의 미래와 인생을 내 손아귀에 쥐려는 욕심이 더러운 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신의 시각이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미리 결정해놓지 않으셨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유와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직업 선택의 문제, 배우자의 문제, 이사의 문제 등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애를 태우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마음대로' 결정하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사람과 어디서 살 것인지에 대해 결정 내린 바가 없으시다. 즉, 미래에 우리가 꼭 그대로 따라가야만 하는 하나님의 발자국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과 살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원하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니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대표적인 문제인 '비전 찾기' 역시 우리 삶의 여정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실험하고 시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주신 비전, 혹은 소명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과학이자 예술이지 하나님의 깜짝 선물 혹은 비밀 임무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뜻'은 없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현재 지향적이다.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겠지만, 이 책은 '현재의 순간'에 '거룩함'의 옷을 입혔다. 바로 현재가 '거룩한 지금'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시간이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할 순간이다. 과거도 미래도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 바깥의 일이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를 어쩔 수 없으니까 내팽개쳐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실 것이고, 미래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순간’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만큼의 지혜가 있으며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이미 알고 있는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해피 엔딩’이라는 마스터플랜은 정해져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 한다. 자유와 선택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모순'이 아니라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진실인 '역설'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복잡한 인생이나 영적이고 신비한 영역이 아닌 아주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분야에서 그러한 '역설의 진리'가 드러나는 원리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묘한 일치감에 미소지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정확한 위치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통계적으로 그 분포는 항상 일정하다는 물리학의 법칙과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자유 사이의 관계가 서로 비슷한 것 같다. 인간 개개인은 그의 의지에 따라서 자유롭게 선택을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안에 그 자유와 선택의 결과들이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인간을 사랑하지만 완전히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 하나님이 좋다. 완전히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가 나에게 격려와 안정감을 준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 아름다운 나라는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경계가 한없이 넓어짐을 느꼈다. 나는 위험스러운 결정과 바보 같은 선택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로 전력 질주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진흙탕 속에서 뒹굴 수도 있고 벼랑 끝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나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최악의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끝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반전'이 분명히 있다.


나는 아침마다 성경을 읽는다. 때로는 성경이 나의 인격 수양과 정신 건강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경은 거룩한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하고 더럽고 추접스럽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인 이야기, 당대의 의인이라 불리던 노아가 술마시고 벌거벗고 다닌 이야기, 요셉이 으스대며 형들에게 자신을 뽐내다가 노예로 팔려가는 이야기, 이집트의 왕자 모세가 홧김에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 나실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사사인 삼손이 함정에 빠져 머리카락이 잘리고 눈이 뽑히는 이야기,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의 간음과 그 죄를 덥기 위한 더러운 살인 음모 이야기,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여종 앞에서 욕하면서 그를 부인하는 이야기, 율법과 구약 성경에 정통한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이야기, 성경은 ‘성경(聖經)’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약점이 많다. 그러나, 성경이 ‘성경(聖經)’으로 불리는 것은 그 모든 잘못된 선택과 후회스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심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의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해졌다. 나의 '지금'은 과거와 미래의 영역에 의해서 결코 침범 당해서는 안 될 거룩한 곳이다. 바로 지금 이곳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시간과 공간이다. '현재'는 단지 내가 통제하고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거룩한 곳이며 신비가 존재하는 경이로운 곳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천천히 살아갈 때에 심리학자 융이 말한 '의미있는 우연의 일치'나 혹은 '하나님의 음성'에 좀 더 민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지금'을 주시하지 않아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요셉의 꿈'을 꾸고서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솔로몬처럼 '무엇을 원하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처럼 마게도냐인의 손짓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베드로처럼 보자기에 가증한 음식이 공중에서 왔다갔다하는 이상한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나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하고 집중할 때 일상이 기적처럼 내게 말을 걸고 나는 그 순간순간을 경이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재'라는 신비의 바다에 뛰어들려고 한다. 그리고 편하게 나의 몸을 맡기려고 한다. 천천히 손을 내밀고 발을 굴러 헤엄쳐 나갈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것이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 것이다. 엉뚱한 곳으로 가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해류를 타고 하나님께서 계획해놓으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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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2006-11-28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읽다 보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