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상징
칼 융 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프로이트는 무의식 세계의 개척자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지도는 사나운 용과 질퍽질퍽한 늪지대 표시가 대부분이다. 분명 의미가 있는 곳일지는 몰라도 별로 내키지는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융이 그려낸 무의식 세계의 지도인 이 책은 내게는 '보물 지도'처럼 보였다. 대개의 보물 지도가 그러하듯이 이 지도도 신비스러운 문자와 수수께끼로 뒤덮여 있다. 무의식 세계는 미지의 세계이며 극도로 위험하고 이해하기 힘든 곳이지만 그 위험과 고생의 경험을 한 방에 날려버릴만한 눈부신 보물의 존재를 융은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융은 프로이트에게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단지 융을 집단 무의식의 창시자로 알고 있었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 이유와 그의 사상의 핵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마 그의 책이 워낙 난해한 것이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몇 번 그를 이해해보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단지 문자를 읽어내는데 만족했을뿐 그의 사상의 기반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 융을 읽는데 큰 실마리를 제공하였고 나는 이 비밀의 문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먼저, 집단 무의식의 논리적 근거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과학하는 방법이 놀랍고 대담하다고 느꼈다. 융은 인간 육체의 진화론적 관점을 인간의 정신의 영역으로 가지고 왔다. 인간의 정신 역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상의 형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후천적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본능과도 같은 선천적 의식이고 그것을 융은 집단 무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작은 곤충까지도 본능에 의한 이미 습득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인간만이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논리적 모순이라는 그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즉, 집단적 무의식이 혹은 선조들의 지식과 정신이 인간에게도 정신적인 본능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할 '절박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합리주의, 이성주의가 종교를 현실에서 분리해냈지만 결론적으로 더 못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어떤 것이든지 가능하다라고 생각하며 미지의 세계를 인간의 삶에서 분리해낸 결과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처럼 인간의 소유물과 소비행위가 인간 자체를 규명하게 된 시대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미개인들이나 원시인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미신에 불과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종교는 삶과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원시인들이 더 풍요롭고 가치있게 인생을 영위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존재적 의미 상실은 분명 생명 현상이 지니는 복잡한 속성을 무시해버린 태도에 기인한다. 


"융 박사가 생명 현상이 지니는 복잡한 속성을 존중한 것은 그러한 현상 자체가 그에게는 신비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생명의 현상이라는 것은,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설명이 끝난> 현실은 결코 아니었다. " - p.311


프로이트에 의해서 무의식을 무시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면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의식을 존중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왜 수많은 신화가 어떻게 우리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한 개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적응하고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지 왜 화가들은 그토록 이상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사람들은 거기에 심취하게 되는지 단서를 얻게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고의 영역을 넓혀주거나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내적 성장에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적 성장으로 말미암아 아마도 우리는 조각을 맞추어 나가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건이나 사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하여 의미있는 삶을 이루기 위한 퍼즐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신중하게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융이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그의 무의식의 영향이었다. 아마도, 이 책이 쓰여지지 않았다면 많은 여행자들이 인간 무의식의 세계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 무의식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책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미지의 세계의 지도를 그리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지도는 인생을 진지하고 가치있게 살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한 융의 무의식에 감사하는 바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박사 2004-10-1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재미있는 책이었음.... Thanks for comment. ^^

심천 2006-11-28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비밀의 내용을 담은 것처럼 흥미를 끄는 책같아요.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