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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지호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카오스 이론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하다. 카오스의 기본적인 개념은 가장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 영향력을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계론적 사고관으로 카오스 이론을 세상에 접목시켜본다면 개인의 가장 작은 행동 하나도 인류에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에디의 천국' 등과 같은 소설도 이러한 영향력을 받은 것 같다. 카오스의 대표적 사례인 나비 효과는 CF를 통해서도 소개된 바가 있고, 오죽하면 카오스 세탁기라는 것도 있을까?
카오스, 즉 혼돈 이론은 그 이름에서부터 연구자들에게 좌절감을 준다. 그리고 역시나 그 연구 결과도 아직 미미하다. 뉴턴이래로 발전되어온 기계론적, 결정론적 사고관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아마도 혼돈 이론에 의해 거의 붕괴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세상은 복잡해서 알 수 없다.'
물리적 세상이 그렇다면 인간 세상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카오스가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법칙과 규칙을 발견해내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노력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카오스는 단순한 예측 불가능성을 설명하지만 격변 가능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p.32-
그래서 저자는 세상의 '격변 가능성'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는 여기서 '임계상태'라는 것을 정의한다. 임계상태란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조건 사이에서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안정화된 상태나 아주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격변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풍선안의 나비가 수십만년 날개짓을 해도 풍선안에서는 태풍이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태풍 속의 나비가 영원히 날개짓을 해도 태풍이 사그러드는 일은 없다. 안정화된 상태나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격변의 가능성은 없고 바로 그 중간인 임계상태에서만 격변이 가능하다. 재밌는 사실은 임계상태에서 일어나는 격변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임계상태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모래더미 게임과 지진을 예로 들고 있다. 이러한 예에서, 전혀 규칙이 없을 것 같지만 묘한 멱함수 법칙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산불, 도시의 크기, 전쟁의 사망자 수, 심장 박동 패턴, 역사적 사건 등 전혀 규칙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것에서도 이런 법칙이 성립한다.
그런 임계 상태의 법칙을 사회나 역사에 적용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멱급수 법칙이 어떤 사건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법칙이 물리적 세계 뿐만이 아니라 인간사, 세상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개개인의 미래는 결정할 수 없어도 인류 역사나 사회라는 큰 틀은 일정한 법칙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단지 인류의 미래가 역사와 현재의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혼돈 그 자체여서 전혀 알 수 없이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아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누가 읽어야 하는가? 과학은 현대 사회에 가장 추종자가 많은 종교라 할 수 있다. 전혀 규칙성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곳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은 과학자들의 믿음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분명히 규칙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과학계의 격변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그 법칙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고는 했다. 과학적 물리적 법칙이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는 렌즈 역할을 해온 것이다. 과학적 발견과 혁명의 영향은 단지 과학의 영역에서 멈추지는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현대인 모두가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