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눈이 주의 영광을 보네
필립 얀시 지음, 홍종락 옮김 / 좋은씨앗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얀시는 질문맨이다. 수없이 질문한다. 얀시의 책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금기시되는 질문도 서슴없이 하기 때문이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그는 마구마구 쏟아낸다. 그 모든 질문에 그가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스스로 정답을 써내려가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인터뷰도 하고 책도 읽고 사색도 한다. 그런, 노력의 과정들이 그의 책에 나와 있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아.. 시원하다'라는 느낌과 '아.. 그래그래.'라는 느낌이 든다. 수업시간에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아 이거 질문했다가 무시당하거나 웃음거리 되는거 아냐?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라에 다른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바로 그 질문을 해 주면, 마음 속으로 엄청 고마운 느낌이 든다. 얀시는 내게 그런 고맙고도 용감한 친구이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시행 착오도 겪고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의 결론을 내어놓기도 한다.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아는 척하지 않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책이 쉽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의 대상 독자는 신앙의 경계지대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다. 얀시는 기독교인이지만 이 책은 기독교를 선전하는 책이라기보다는 무신론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그가 이야기하는대로 무신론자이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다. 아마 제목이 너무 기독교적이어서 이거 '기독교 서적'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원제는 'Rumors of Another World'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은 기독교 출판사가 아닌 일반 출판사에서 번역이 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정말 저자가 이 책을 읽기 원하는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목도 아쉽다. 그냥 원제의 뜻을 살려 '또 다른 세계에 관한 소문'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듯 하다. 기독교 출판사에서 기독교 서적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내놓으니 제목이 이렇게 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얀시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이 세상을 어떻게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수많은 예시와 질문들이 이어진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면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행동한 사람들이 결국 옳았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들도 열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존재합니다.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정신적이고 신념적인 견해에 대한 추상적인 설득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단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자세만 되어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도 이 책을 읽고 모든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으로 자신의 견해를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단지 또 다른 세계의 소문에 대하여 그 진위를 알아보고자 더 접근하려는 발걸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인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았다. 일단 제목에 속은 것이 크다. 그러나, 원제와 목차를 보고도 나는 계속 책을 읽어 내려 갔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기독교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를 알기 위한 일종의 스파이짓을 하고 싶어서였다. 얀시라면 분명히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탕자 체험'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부자 아빠를 둔 탕자가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 곁을 떠나서 겪는 체험을 몸소 할 용기는 없고, 그렇게 했을 때 어떤 느낌과 어떤 해로움이 있는지 체험해보고 싶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가상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얻은 유익 외에 이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균형잡기 기술이다. 보이는 세계만을 살아가는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현실 감각이 무너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인식하면서 보이는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는 상당히 고난이도의 기술이지만 얀시 자신도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쉽고도 친절하게 그 방법을 제시한다.
얀시는 거의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늘 새로운 질문과 신선한 견해로 나의 머리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이다. 자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담무쌍한 그의 질문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