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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아서
빅토르 프랑클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이서브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캐스트 어웨이'는 특급운송업체 Fedex의 직원 척 놀랜드(톰 행크스)가 무인도에 갇혀 겪게되는 일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영화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 영화가 결코 유쾌한 영화가 아니었다. 무인도에서의 몇 년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그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연락을 하며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런 기분을 대강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배구공에 눈, 코, 입을 그리고 Wilson이라는 이름의 친구로 만들어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자살 시도도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그나마,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그의 약혼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인도를 탈출하자마자 그녀를 찾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감격의 재회를 하며 이야기는 끝나겠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이런 젠장... 인생이란 이런 것이란 말인가? 그를 버티게 해준 그의 희망과 기대는 '물거품'에 불과했다. 허구였다는 말이다. '캐스트 어웨이'의 감독은 인생이란 해변에 앉아서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무엇이 떠내려올지 모르는. 그것은 사람의 노력이 관여하지 않는다. 단지 바람과 파도의 힘에 의해 혹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냥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좋은 것이 올 수도 있고, 전혀 쓸모없는 것이 올 수도 있다.
이거 너무 심한 이야기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더 심한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책 '삶의 의미를 찾아서'에서 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3년을 보낸 사람들이 자유를 얻은 후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야속함과 절망감이었다고 한다. 수없이 꿈꾸던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 그러나, 그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이다. 사랑의 꿈과 기대가 인생의 의미를 가진 견고한 성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고통이 끝나면 그것에 대한 보상이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고통이 의미있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은 빅터 프랭클의 3년 동안의 아우슈비츠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탄생한 로고테라피라는 의미 치료법을 이야기한다. 아우슈비츠를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겪어보지 않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는 안다. 정말로 양심적인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제 28명 중에 1명 꼴로 살아나왔다고 하니, 죽음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날, 어느 때 자기 옆의 동료가 죽어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저 그들에게는 무감각한 일이었다. 끔찍한 일도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면 그것을 인식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본능 외에는 다른 모든 외부 환경에 대해 믿기 힘들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수용소 입소 직후에 특사 망상, 적응기에 있어서 수없이 꿈꾸는 미래의 희망,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된 후의 절망감에 대해 의사로서 과학자로서 분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용소의 현실이 얼마나 끔찍했냐면 일례로 옆의 동료가 악몽을 꾸는 것처럼 보여도 그를 깨우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지금의 현실보다 더한 악몽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사랑도 희망도 무너질 수 있다면 인간은 무엇이며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빅터 프랭클은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좋다. 그럼, 사람들은 왜 사는 걸까? 빅터 프랭클은 우리에게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기보다는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자유'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말이 바로 '책임'이다. 그리고, 바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내가 꼭 책임져야할 일이 분명 삶 속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분명히 그것은 개인적으로 내면에 존재하는 삶의 이유와 의미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이 진정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자기 초월을 통해서 즉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도 고통 자체의 의미가 없다면 고통 받다가 죽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냐고 빅터 프랭클은 묻는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며 그들의 인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보았고 그래서 이야기한다. 인간은 상황과 조건에 따른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의지가 있고 결단할 수 있다. 동전을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 기계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런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와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인생은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누군가가 사람을 만들고 생명을 주었다면 그는 장난으로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보고 그에 대해 절대적인 실망을 했다. 그는 세상과 인간이 장난으로 우연스럽게 창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지간하면 그의 책을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생을 희극적으로 볼 수도 있고, 멋진 드라마나 영화에 자신을 몰입시키며 즐거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인생이다. 어디로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파도에 밀려오는 것을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할 때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이 신의 장남감 정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없이 약하지만 한없이 위대하기도 하다.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지라도 인생에는 위대한 의미가 있다. 빅터 프랭클이 대답을 주느냐하면... 주지 않는다. 그 의미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의미여야 할 텐데, 개인마다 발견하고 찾아야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암벽 타기나 스카이 다이빙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삶을 혹은 존재를 인식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의 이 경험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빅터 프랭클 박사의 노력은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조언자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