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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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에게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의 느낌을 말로 전달해준다면 어떨까? 아무리 설명해도 그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설명하다가 '한 번 타봐'라고 이야기하고 끝날지도 모르겠다. 말로써 전달 가능한 것이 있고 말로써는 경험의 100분의 1도 느끼게 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느 CF 에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말이 그런 말일 것이다. 결국 체험하지 않는다면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체험은 단지 우리의 오감으로 감지된 것으로만 끝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우주 여행사들의 대부분이 우주 여행을 통해서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오감의 감각 기관에 똑같은 느낌을 준다고 해서 그런 충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은 육체적인 충격보다 훨씬 큰 정신적인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그게 무얼까? 딱히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우주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또한, 우주 비행사들은 대부분 신을 감지했다고 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신이든 불교의 신이든 말이다. 정확히 어떤 종교의 신이 아닌 뭔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존재'에 대해 인식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다. 신이 존재하고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신은 취향이 특이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 다시 신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신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세상을 훨씬 깊고 넓은 안목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 혹은 느낌에 이견을 달 수 없는 상황이다. '너희들이 우주 여행을 알아'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고 그렇다면 그들의 체험은 너무나도 독특하고 독보적이어서 그들의 주장은 우리에게 단지 그 경험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단지 볼거리를 원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신적 세계의 깊이를 넓히기를 원하는 철학자, 사상가, 정치가들에게도 그리고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보고 싶어하는 탐험가와 과학자들에게도 그리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도 신의 눈으로 세상을 한 번 보고 싶다.'고...

이 책은 게맛의 설명을 듣고 게맛을 상상해보라는 웃기는 책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우주감각을 설명한다고 해서 우리는 우주감각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맛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맛을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의 확장에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10까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11을 절대 생각하거나 사용할 수 없는 사람에게 11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10 이상의 것이 존재할 수 있고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의 이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이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약간 약이 오르기도 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우주여행의 기회가 아마도 내게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 감각에 대한 생각의 확장은 책을 읽는 내내 내게 유쾌함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 너머에 무엇인가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흥미거리 이상의 유익을 내게 주었다. 우주 비행을 못해본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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