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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크리스트 ㅣ 부클래식 Boo Classics 6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두행숙 옮김 / 부북스 / 2016년 8월
평점 :
어제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한 부분을 읽다가 다시 한 번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 단어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이데거도 그렇고요. 그런데, 니체는 쉽고 명료하게 글을 쓰네요. 새로운 말을 만든 것도 별로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너무 명료해서 오해하고 싶어도 오해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재미도 있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니체를 좋아하나 봅니다.
제목부터가 아주 대담하죠. 안티크리스트. 니체의 결론부터 써 보죠.
"이로써 나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므로 나의 판단을 말하겠다. 나는 기독교에 유죄 선고를 내린다... 기독교 교회는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부패 중에서도 최고로 부패한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부패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부패에의 의지를 품고 있다." (141)
이 책을 안 읽어봐도 전체 내용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는 강렬한 결론입니다. 아버지가 목사이고, 어머니가 목사의 딸이었던 니체는 기독교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내용도 그렇고요.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그러나, 니체는 성경의 모든 내용과 기독교도라고 스스로를 부른 모든 사람들을 비판하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해로운 것으로 단정짓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고요.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에덴 동산에 있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단 한 가지 도덕은 '너는 알지 말라'는 것이다...신은 엄청난 불안을 느꼈지만 영민함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지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102)
이 인용구절의 뒤에 부분은 소설이지만 앞의 첫 번째 문장을 쓰면서 니체는 어처구니 없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아는 게 무슨 죄가 된다는 것이냐?'라고 외치는 니체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저도 왜 그 나무의 열매의 이름이 굳이 선악과였는지 궁금합니다.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여하튼 니체는 이런 식으로 성경의 여러 가지 내용들에 딴지를 걸어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니체가 기독교에 대해 뭘 싫어했는지 감이 잡히네요.
"기독교는 나약하고 천박하고 실패한 모든 것들의 편을 들어왔으며, 생명의 강한 보존 본능에 반박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왔다." (13)
"나약한 자들과 실패자들은 몰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애의 제 1원리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그들이 몰락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11)
니체가 증오했던 것은 기독교의 나약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니체가 볼 때 기독교는 스스로가 나약할 뿐만 아니라 나약한 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투쟁하기보다는 단순히 그들을 위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도 나약하게 만드는 해로운 종교였던 거죠. 기독교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갈 거니까 지금은 괜찮다는 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을 무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나약한 자들과 실패자들이 몰락해야 한다는 말은 '삶을 부정하고 삶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제발 빨리 꺼져라'라는 말로 들립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약자의 개념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니체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건강을 '위대한 건강'으로 불렀다죠. 그의 건강이 좋을 때 그가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짐작이 가는 말입니다. 그만큼 니체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체가 제 친구였다면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네요.
"사는 게 너무 좋지 않냐?"
그랬다면 저는 이렇게 대꾸하겠습니다.
"미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