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리 보리피리 이야기 3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 보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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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나리, 책표지의 나리꽃을 보면서 어릴적 마당의 한쪽에 내 키보다도 높은 가지 끝에 꽃을 피우곤 하던 참나리를 생각하였습니다. 붉은 빛이 도는 꽃잎을 시원스레 벌리고 꽃술을 내보이던 고왔던 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지만, 내겐 그 이상의 감흥이 있는 꽃은 아니었는데, 이 책은 내 기억속에는 그리 무미건조하던 나리꽃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하교길에 꽃을 따서 학교이름을 주절거리며 꽃잎을 하나씩 뜯어가며 친구들과 놀던 코스모스나 손톱에 곱게 물들이던 봉숭아와 같은 그런 의미와 감흥을 담아서 말입니다.

  교정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로 봄색이 완연한 시골학교에서, 그 풍경만큼이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선생님,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야야 -그러고 보니 이 이름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부를 때 지칭하며 쓰는 말이었던 듯 합니다-는 선생님과 겨울을 날려고 땅속에 묻었던 꽃의 알뿌리를 캐서 화단에 심는 중에도 자신의 마음을 쏙 빼앗아간 뒷산의 산나리에 온통 마음이 가 있습니다. 죽은 아이들을 무덤도 없이 가마니로 둘둘 말아 그냥 돌로 덮어 두었다는 뒷산의 애장골에 피었던 홍싯빛 산나리 생각에 신문지를 도화지 삼아 집 장독대 곁에 예쁘게 피어난 산나리를 그리며, 기어이 한 포기라도 캐와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리로 가는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것은 야야도 그의 친구들도 모두 애장골에 묻혔다는 아이들에 대한 무섬증 때문입니다. 직접 겪지 않고 어른들에게 듣기만 하였지만, 애장골에 얽힌 사연은 그리 막연히 의미없는 두려움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야야와 그의 친구들이 산나리를 캐려고 애장골에 들어섰을 때, 한 친구가 누군가 자신의 발을 잡아당겼다며 놀라 달아나기 시작하고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서 소리치며 도망치기 시작한 순간, 막연한 두려움은 여전히 실체가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애장골에 묻힌 아기 귀신이 발을 잡아 당기고 신발을 빼앗아 갔다는..... 하지만 어느 날 같은 학교 동갑내기의 죽음으로,  야야에겐 그리 동화같이 현실이 되어버린 애장골의 아기 귀신과 산나리는 의미를 담은 현실이 됩니다. 열 세살의 차순복, 외떨어진 동네에 살던 아이였고, 같은 반이 아니었고, 친구들이 놀리니까 야야도 이유없이 놀려대곤 했던 아이의 죽음과 가난과 버무려진 그 아이의 죽음에 얽힌 사연과 지게에 얹혀 애장골로 갔다는 아이의 주검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까지 실체없이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애장골과 그곳에 예쁘게 피었던 산나리가 이젠 간절하고 새로운 의미를 품게 됩니다. 이젠 야야는 놀림만 받고 다정하게 이름 한번 제대로 불려보지 못하고 죽은 순복이와 엄마 젖 한번 빨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린아이들에 대한 생각에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피는 애장골의 산나리를 꺾어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꺾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애장골은 그 슬픈 영혼들의 보금자리이고, 이 세상을 곱게 살지 못한 그 슬픈 영혼들이 별이 닮은 산나리로 피어난다는 것을, 야야는 그 때 새로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란다는 건, 야야처럼 세상에 의미를 담아간다는 것, 애장골과 산나리에, 그리고 봄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과 새싹에, 여름날 이글거리는 태양과 가을의 마당가득히 날리는 낙엽과 온 천지를 뒤덮은 흰 눈, 그리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삶과 죽음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따뜻한 의미를 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시간이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애장골에 피어나는 별을 닮은 산나리의 모습 속에서 가엾은 친구 순복이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이 간직해 주었던 야야처럼 슬프고 아릿하긴 하지만 따뜻하고 소담스런 마음이 자라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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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박사와 떠나는 공룡대탐험
두걸 딕슨 지음, 원지인 옮김 / 파브르북(북공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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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이미 20여권 가까운 공룡에 관한 책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해 꾸며낸 공룡에 대한 동화책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른들이 꼼꼼하게 볼수 있는 백과사전식의 공룡책까지, 다양하게 말입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는 그래도 예전처럼 공룡책에 목매는 정도는 아니라서 최근에는 서점에서 공룡책 앞에 가서 어떻게든 새로워 보이는 책 한권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아마도 여러번 기대를 가지고 사온 책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하고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경험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고, 자란만큼 관심의 범위가 넓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아직도 새로운 공룡책을 보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이고 열중해서 읽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공룡박사와 떠나는 공룡대탐험. 이 책도 내용을 들춰보기 전까지는 다른 공룡에 대한 책하고 크게 다르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매년 발견되고 소개되는 화석들이 있겠지만, 수많은 책에서 소개되는 공룡의 종류나 모습이 획기적으로 바뀔수는 없겠기에, 그리고 공룡에 대한 책은 어느 정도 접해 보았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자만이었겠지요.

 석탄기와 페름기를 거쳐 진화한 파충류의 시대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책은 2억 2천 5백만 년 전의 트라이아스기 끝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백악기 후기까지 번성한 공룡들을 크게 육식 공룡, 초식 공룡, 바닷속 공룡, 하늘의 공룡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이미 많은 책들이 보여준 것이라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한데, 책을 읽어 가노라면 지금까지 보았던 많은 공룡을 소개한 책과는 전연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서술방식이나 이야기의 내용,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각, 공룡들에 대한 이야기의 소재 등에서의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요. 책 제목 처음에 공룡박사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은 상투적인 광고의 목적이 아닌, 아마도 이런 자신감의 표현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자는 들어가기를 통해서 자신이 이 책을 통해서 소개하는 삽화들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공룡의 몸의 구조뿐만 아니라 피부결, 근육구조와 피부색까지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것들이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한가지 이론을 실제인양 단정하지 아니하고 다양한 새로운 이론들을 함께 소개하고 그 증거들을 보여주어서 독자들이 좀더 많은 자료를 통한 결론을 추출할 수 있게끔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고, 아울러 최신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거리들도 함께 곁들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며 독특한 맛을 느끼게 된 배경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내용을 읽다보면 다양한 아름다운(?) 공룡들의 삽화가 들어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양한 화석이나 뼈대, 비교 그림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한가지 공룡 -티라노사우르스니, 이구아노돈이니 하는 등의 - 개개를 설명하고 특징짓기 보다는 비슷한 종류의 공룡들에 대한 이야기, 즉 그들이 나타나고 서로의 특징이 무엇이고, 뼈대의 특징은 무엇이고, 어떤 화석들이 발견되었고, 어떻게 먹고 살았고, 어떻게 화석이 되었을까 등의 이야기를 통해 공룡무리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고나 할까요? 즉 이러저런 화석을 통해 이 종류의 공룡의 특징이 파악되고, 그래서 이러한 모습일거라고 추측된다는 식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마리의 공룡, 한 종류의 공룡이 어떻게 발견되고 그러한 형태를 지니게 되고, 그들의 특징이 언급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에 답을 얻게 되는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룡들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땅속에 묻혀 화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라진 생물체에 대한 해석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책속에 담긴 멋진 공룡의 모습은 결국은 실체라기 보다는 많은 면에서 상상력과 과학적인 접근의 산물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지점에선가는 전혀 비슷하지 않은 공룡이야기가 사실로 믿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많은 공룡에 대한 책속에는 개개의 완벽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공룡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기는 얼마고, 무엇을 먹고 살았고,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었고.... 하는 식의 눈으로 실제 본것을 이야기하는 듯이 확신에 찬 공룡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또한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공룡을 만나노라면, 많은 매력적인 가설과 이론속에서 만들어진 공룡의 이야기가 사실적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물음표를 달고 꾸준히 탐구해야 할 많은 질문들이 남아있고, 많은 사실적인 공룡의 이야기 속에 아직도 무한한 상상력과 과학적 탐구로 메꿔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아이들이 공룡박사와 떠나는 이 공룡대탐험은 공룡들이 살던 시대에 대한 이해, 공룡들의 특징과 매력에 대한 이해에 국한된 짧은 소견이 아니라 공룡이 화석이 되고 그 화석이 여러가지 가설과 과학적인 탐구의 결과로 다시 살아있는 공룡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와 뼈 몇조각이나 조그마한 흔적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살았던 생생한 사라진 세계로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폭넓은 시야를 가지는 과정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그런 다른 맛 때문에 우리 아들녀석은 책을 보는 내내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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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Town
박금숙 지음 / 다름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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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미르미 통합 프로그램, 그리고 자기 주도적 학습 (self-directed learning)..... 다미르미라는 이름이 조금은 생소하지만, 최근 서점가를 한번 휩쓸고 지나간 자기 주도적 학습법을 통해 아이들의 영어 습득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탄생한 통합프로그램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의문을 중심으로 언어 영역과 수/과학 영역, 표현 영역, 시회 영역을 다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학습할 것인지 정하고 행하고, 또한 스스로 진단하고 평가, 개선하는 학습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설명하는 말들이 더 어려웠습니다. 그냥 우리 아이들처럼 동봉된 CD를 틀어놓고 여기저기를 눌러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접근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어려운 설명보다 책과 CD와 극놀이 교구, 그리기 워크북을 통해서 영어와 친해지기 또는 영어와 놀기 정도로 설명한다면 훨씬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 물론 이런 나의 이해가 이 프로그램을 고안한 이들에게는 어이없는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프로그램의 구성은 먼저 마을에 있는 여러 가게와 중요한 장소,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담은 본문을 품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아이들이 틀어놓고 게임이나 음악연주를 할 수도 있고, 본문을 들여다 볼 수도 그림을 클릭하며 단어를 익힐 수도 간단한 대화를 익힐 수도 있는 CD-Rom이 있고, 책 내용과 연관된 그림이 담겨 있는 그리기 워크북, 종이 인형을 가지고 연극을 할 수 있는 극놀이 교구 이렇게 4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의 눈높이로 이해한다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본문의 내용과 단어들을 재미있게 반복시키기 위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억지로 빵은 bread, 빵집은 bakery 하고 외우지 않게 하더라도 아이들이 CD-Rom으로 놀면서, 그리기와 연극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만들기 위한 접근법이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요즘 아이답게 CD-rom에 매달려 한참을 놀았습니다. 특히 게임하고 음악연주를 좋아하는 듯 합니다. 물론 아이마다 취향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러한 모습이 이 프로그램 고안자의 의도이겠지요.^^

 지금의 나와 같은 세대는 아마도 영어에 투자한 만큼의 결과물을 가지지 못한 가장 비효율적인 언어습득 방식으로 영어를 배운 이들일 듯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우리가 했던 방식보다는 훨씬 효율적이고, 질적인 면에서도 개선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 하구요. 물론 모든 이들에게 그런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언어는 습관이라고, 그래서 영어도 생활의 습관이 될만큼 반복하고 가까이 해야 실력이 늘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는데, 이 책 'Our Town'을 통해 소개된 다미르미 프로그램이 그러한 놀이로서 습관으로서 영어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건 모든 면에서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부분에서, 즉 아이들이 영어라고 지레 겁먹고 뒷걸음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나 게임처럼 그냥 달려들어서 들어보고, 눌러보고, 흉내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배려를 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에서 입니다. 결국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매야 보배라고,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어찌 잘 활용하고 반복하느냐가 중요한 부분이겠지요. 영어의 깊은 속살까지는 아니더라도 듣고 놀고 노래하면서 영어에 훨씬 가까이에 다가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이 프로그램이 많은 아이들에게 좀더 효율적인 영어학습의 길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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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상구 - 안락사를 말하다
데릭 험프리 지음, 김종연.김종연 옮김 / 지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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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략난감' 책을 보며 드는 이러한 느낌은 아마 내 자신의 신앙적인 신념과 저자가 말하는 이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갈등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안락사에 대한 학문적인 논쟁이나 옹호를 기대한 거였기에, 책을 읽으며 그러한 안락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미 논점을 벗어난 거라는 느낌에 당혹스러움도 있었습니다. 저자가 아내의 안락사를 도왔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그에게 안락사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논쟁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책의 전개는 안락사의 당위성 -인간이 품위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아래 진행됩니다. 그리고 안락사 진행의 방법론적인 이야기들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소생의 희망이 없거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마지막 출구로 택할 수 있는 것은..... 저자는 안락사라고 말합니다. 몇가지 구분을 할 수 있지만 귀결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안락사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다른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들여다보노라면 아주 세세한 부분들까지 신경을 써서 적어 놓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도움을 어떤식으로 받을 것인지, 어떤 약물이나 방법은 적절하지 않고 어떤 약물이나 방법이 적절할 것인지, 약물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일을 실행하기 전에 준비하고 작성하여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실행장소와 시간은 어느 때가 좋을지 등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스스로 안락사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영화에서처럼 총 한방 쏘고, 약 한봉지 입에 털어넣는 것 같이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쉽게 생각했다가 실패한 후에 훨씬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마지막까지 삶의 소망을 경시하지말라는 충고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선택이 안락사라면 이러이러한 것들을 준비하고 고려하여 실행하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책의 처음 부분에 자신의 이 책이 자살에 이용되는 것에 대한 염려(?)를 적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책임한 죽음을 도와주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에 대한 저자만의 고민일 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그러한 사건에 책이 이용된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 환자들에 대한 자신의 확신과 이 책의 의미를 철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저자가 의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아마 저자의 생각에  안락사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부류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암, 에이즈 혹은 기타 말기 질환 환자

- 말기 단계로 들어선 질환 환자

- 말기 증상이 고통스럼고 비참할 것으로 간주되는 환자

- 가능한 모든 치료를 다 받은 환자 

- 의사와 잘 알고 지내며 인간으로서 상호 존중하는 환자

- <마지막 비상구>를 읽은 후 차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단독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한 환자

- 죽음을 앞당기는 것에 대해 가족의 승인을 얻었거나 어떠한 가족도 없는 환자

- 의사의 관여에 대해 사려 깊게 행동할 환자

 낙태와 안락사, 많은 시간의 논쟁과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인 듯 합니다. 더더구나 양날의 칼처럼 한 쪽의 편리함이나 유용함의 허용이 예상하지 못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비수를 함께 숨기고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나 같은 이들은 아마도 신의 영역에 남겨두고 지키고 싶어하겠지만, 저자와 같은 이들은 인간의 품위와 자신에 대한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실행하려고 하겠지요. 그리고 보라매 사건이나 아들의 호흡기를 제거한 아버지의 사건처럼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안락사와 연관된 문제들은 우리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또한 합리적은 해답을 찾아갈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의도에 대한 공감을 갖지만, 아직까지는 사람의 나는 것과 죽는 것은 신의 영역에, 적어도 인간의 결정권 너머에 있는 것 -여러가지 그럴듯한 이유가 덧붙여지더라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이 삶을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죽음을 소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배려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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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심리의 기술 트릭
안세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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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매일의 삶이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협상과 타협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이 책은 모든 이들에게 귀기울여 들을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저자가 우리나라 최고의 협상전문가라고 하고,  그런 저자가 일반인들이 부담감 없이 읽기에 알맞게 썼다는 관심을 끄는 말들을 제외하고 순전히 책의 내용만 가지고 우리의 삶을 비춰보더라도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고 당했거나 써먹었던 수법들의 일부를 깨달을 수가 있고, 그런 때는 이렇게 처리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클린 트릭'-멋지게 해치우는 재치-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소개하는 이 책은 여러가지 협상에서의 요령과 기법, 그리고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개론서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의 비지니스를 하는데 도움이 될 쉬운 책이라는 의도로 씌여졌기 때문에 체계적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경험이 묻어나는 실례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그 스토리 속에서 각자가 주워담아야할 묘수들을 차분히 풀이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매일의 생활속에서,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협상이라는 크고 작은 일들을 치뤄내면서도 그러한 일들의 의미나 또는 그러한 일을 다루는 방법이나 기법 등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나 고민이 없이 지나치곤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이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겠지요. 물론 그 중에는 세상사는 이치를 조금 더 깨닫거나 약삭빠르게 이용하여 조금의 이득을 더 보거나 손해를 줄이는 정도의 일처리는 있었겠지만, 그것들이 어떤 논리적인 체계나 설명 아래서 행해지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구요. 하지만 저자의 실례를 통한 이야기들이나, 특히 역사속에 흐르는 협상 이야기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이나 서희 장군,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기관총을 구하기 위한 협상의 모습을 보노라면 클린 트릭을 통한 협상의 승리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멋지게도 하고 통쾌하게도 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에서 승리한다는 것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날마다 우리가 하는 협상이 야누스의 모습을 가진 야수라는 말과 밀고 당기며 이 야수를 다뤄야 하는 과정에서 설득과 배려만으로는 어림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에 저자가 말하고 있는 클린 트릭을 통해서 멋지게 제압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설득', '협상', '처세'에 관한 많은 책들이 착한 선비의 모습을 가진 협상밖에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타박이 결코 부끄럽지 않을만큼 다양한 협상의 방법과 그 이면에 도사린 함정이나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 분야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고 참 유익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협상에 대한 원칙들과 이야기들은 살면서 두고 두고 내 삶을 지혜롭게 할 만한 것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고, 때로는 돈이 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를 지혜롭게 해 준다는 것이겠지요....아마도 뱀같이 지혜롭고 또 한편으로는 비둘기처럼 순결한 삶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한번 쯤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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