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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상구 - 안락사를 말하다
데릭 험프리 지음, 김종연.김종연 옮김 / 지상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대략난감' 책을 보며 드는 이러한 느낌은 아마 내 자신의 신앙적인 신념과 저자가 말하는 이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갈등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안락사에 대한 학문적인 논쟁이나 옹호를 기대한 거였기에, 책을 읽으며 그러한 안락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미 논점을 벗어난 거라는 느낌에 당혹스러움도 있었습니다. 저자가 아내의 안락사를 도왔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그에게 안락사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논쟁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책의 전개는 안락사의 당위성 -인간이 품위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아래 진행됩니다. 그리고 안락사 진행의 방법론적인 이야기들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소생의 희망이 없거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마지막 출구로 택할 수 있는 것은..... 저자는 안락사라고 말합니다. 몇가지 구분을 할 수 있지만 귀결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안락사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다른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들여다보노라면 아주 세세한 부분들까지 신경을 써서 적어 놓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도움을 어떤식으로 받을 것인지, 어떤 약물이나 방법은 적절하지 않고 어떤 약물이나 방법이 적절할 것인지, 약물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일을 실행하기 전에 준비하고 작성하여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실행장소와 시간은 어느 때가 좋을지 등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스스로 안락사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영화에서처럼 총 한방 쏘고, 약 한봉지 입에 털어넣는 것 같이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쉽게 생각했다가 실패한 후에 훨씬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마지막까지 삶의 소망을 경시하지말라는 충고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선택이 안락사라면 이러이러한 것들을 준비하고 고려하여 실행하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책의 처음 부분에 자신의 이 책이 자살에 이용되는 것에 대한 염려(?)를 적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책임한 죽음을 도와주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에 대한 저자만의 고민일 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그러한 사건에 책이 이용된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 환자들에 대한 자신의 확신과 이 책의 의미를 철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저자가 의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아마 저자의 생각에 안락사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부류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암, 에이즈 혹은 기타 말기 질환 환자
- 말기 단계로 들어선 질환 환자
- 말기 증상이 고통스럼고 비참할 것으로 간주되는 환자
- 가능한 모든 치료를 다 받은 환자
- 의사와 잘 알고 지내며 인간으로서 상호 존중하는 환자
- <마지막 비상구>를 읽은 후 차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단독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한 환자
- 죽음을 앞당기는 것에 대해 가족의 승인을 얻었거나 어떠한 가족도 없는 환자
- 의사의 관여에 대해 사려 깊게 행동할 환자
낙태와 안락사, 많은 시간의 논쟁과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인 듯 합니다. 더더구나 양날의 칼처럼 한 쪽의 편리함이나 유용함의 허용이 예상하지 못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비수를 함께 숨기고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나 같은 이들은 아마도 신의 영역에 남겨두고 지키고 싶어하겠지만, 저자와 같은 이들은 인간의 품위와 자신에 대한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실행하려고 하겠지요. 그리고 보라매 사건이나 아들의 호흡기를 제거한 아버지의 사건처럼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안락사와 연관된 문제들은 우리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또한 합리적은 해답을 찾아갈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의도에 대한 공감을 갖지만, 아직까지는 사람의 나는 것과 죽는 것은 신의 영역에, 적어도 인간의 결정권 너머에 있는 것 -여러가지 그럴듯한 이유가 덧붙여지더라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이 삶을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죽음을 소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배려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