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리 보리피리 이야기 3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 보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나리, 책표지의 나리꽃을 보면서 어릴적 마당의 한쪽에 내 키보다도 높은 가지 끝에 꽃을 피우곤 하던 참나리를 생각하였습니다. 붉은 빛이 도는 꽃잎을 시원스레 벌리고 꽃술을 내보이던 고왔던 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지만, 내겐 그 이상의 감흥이 있는 꽃은 아니었는데, 이 책은 내 기억속에는 그리 무미건조하던 나리꽃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하교길에 꽃을 따서 학교이름을 주절거리며 꽃잎을 하나씩 뜯어가며 친구들과 놀던 코스모스나 손톱에 곱게 물들이던 봉숭아와 같은 그런 의미와 감흥을 담아서 말입니다.

  교정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로 봄색이 완연한 시골학교에서, 그 풍경만큼이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선생님,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야야 -그러고 보니 이 이름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부를 때 지칭하며 쓰는 말이었던 듯 합니다-는 선생님과 겨울을 날려고 땅속에 묻었던 꽃의 알뿌리를 캐서 화단에 심는 중에도 자신의 마음을 쏙 빼앗아간 뒷산의 산나리에 온통 마음이 가 있습니다. 죽은 아이들을 무덤도 없이 가마니로 둘둘 말아 그냥 돌로 덮어 두었다는 뒷산의 애장골에 피었던 홍싯빛 산나리 생각에 신문지를 도화지 삼아 집 장독대 곁에 예쁘게 피어난 산나리를 그리며, 기어이 한 포기라도 캐와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리로 가는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것은 야야도 그의 친구들도 모두 애장골에 묻혔다는 아이들에 대한 무섬증 때문입니다. 직접 겪지 않고 어른들에게 듣기만 하였지만, 애장골에 얽힌 사연은 그리 막연히 의미없는 두려움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야야와 그의 친구들이 산나리를 캐려고 애장골에 들어섰을 때, 한 친구가 누군가 자신의 발을 잡아당겼다며 놀라 달아나기 시작하고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서 소리치며 도망치기 시작한 순간, 막연한 두려움은 여전히 실체가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애장골에 묻힌 아기 귀신이 발을 잡아 당기고 신발을 빼앗아 갔다는..... 하지만 어느 날 같은 학교 동갑내기의 죽음으로,  야야에겐 그리 동화같이 현실이 되어버린 애장골의 아기 귀신과 산나리는 의미를 담은 현실이 됩니다. 열 세살의 차순복, 외떨어진 동네에 살던 아이였고, 같은 반이 아니었고, 친구들이 놀리니까 야야도 이유없이 놀려대곤 했던 아이의 죽음과 가난과 버무려진 그 아이의 죽음에 얽힌 사연과 지게에 얹혀 애장골로 갔다는 아이의 주검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까지 실체없이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애장골과 그곳에 예쁘게 피었던 산나리가 이젠 간절하고 새로운 의미를 품게 됩니다. 이젠 야야는 놀림만 받고 다정하게 이름 한번 제대로 불려보지 못하고 죽은 순복이와 엄마 젖 한번 빨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린아이들에 대한 생각에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피는 애장골의 산나리를 꺾어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꺾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애장골은 그 슬픈 영혼들의 보금자리이고, 이 세상을 곱게 살지 못한 그 슬픈 영혼들이 별이 닮은 산나리로 피어난다는 것을, 야야는 그 때 새로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란다는 건, 야야처럼 세상에 의미를 담아간다는 것, 애장골과 산나리에, 그리고 봄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과 새싹에, 여름날 이글거리는 태양과 가을의 마당가득히 날리는 낙엽과 온 천지를 뒤덮은 흰 눈, 그리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삶과 죽음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따뜻한 의미를 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시간이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애장골에 피어나는 별을 닮은 산나리의 모습 속에서 가엾은 친구 순복이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이 간직해 주었던 야야처럼 슬프고 아릿하긴 하지만 따뜻하고 소담스런 마음이 자라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