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전주,라는 도시가 참 좋아졌다. 아마도 한옥마을이 예쁘게 단장되고 난 뒤부터였을 것이다. 영화 <약속>에 나와 더 유명해진 멋있는 전동성당을 둘러보았고, 성심여고 앞 베테랑 칼국수에서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칼국수와 쫄면을 먹었고,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때마침 앞마당에서 열리는 재즈 공연을 보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가 한 상 떡 벌어지게 나오는 막걸리집 골목에서 술 많이 못 먹는 나 자신을 미워하며 안주발을 세웠다. 푹 자고 일어난 뒤에는 평화동 성당에 가서 문규현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를 보고 왔다. 집에 와서도 한옥마을의 골목골목이 눈에 선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자꾸 생각나 침이 고여 왔다. 

지방 도시에 내려갔을 때 그 도시 고유의 색채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슬프게도 그리 많지가 않다. 특히나 시내 한복판이나 주택 밀집 지역에 들어서면 '흠, 좀 후진 서울?' 이라고밖에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도시가 대부분인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  그런데 전주는 고도 경주처럼 도시 전체가 개발제한에 걸려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옥마을 보존지구뿐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고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덕에 일부러 전주로 이주해서 조그만 가게를 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전주, 느리게 걷기>라는 책을 보면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밥집과 찻집, 문화예술인 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 전주에 이렇게 멋진 곳들이 많았나, 새삼 놀랐다. 하루 나들이를 해도 좋고, 몇박씩 머물면서 맛있는 것들만 먹고 와도 몸과 마음이 풍성해질 것 같은 곳 전주.  이 책을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을 하나씩 점 찍다가 하루에 다섯 끼씩 먹어도 안될 것 같아 손꼽기는 포기했다.

그러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다락방 감자탕'집! 

그 집 풍경을 묘사한 대목을 읽다가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곳은 다락방님이랑 꼭 같이 가서 돼지 뼈다귀를 산처럼 쌓아놓고 감자탕을 먹으며 소주를 한정없이 마셔줘야 할 거 같은... 

 전주는 굳이 큰 도시가 되지 않으려고 해서 좋다. 으리으리하게 테마 파크를 짓는다거나, 관변 행사를 크게 연다거나 하지 않는다. 큰 행사라면 전주 영화제 정도? 굳이 서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도시, 자기네 고장의 음식과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도시, 그래서 전주는 시끄러운 축제를 벌이지 않아도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어제 오늘 부여에 다녀왔다. 작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6400억을 들여(이 돈이 도대체 어디서...?) '대백제' 테마파크를 짓고, 곳곳에 넓은 길을 닦아 놓은 모습이 내 눈엔 처연하게까지 보였다. 역사에서 大 자를 붙이는 건, 프랑스 대혁명 정도나 되어야 붙이는 것 아닌가? 스스로 나를 높이는 일이 이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냥, 작은 걸 인정하면 안 되나? 이건 다른 지방 도시를 가도 늘 마찬가지로 느끼는 감정이다. 

전주가 생각난다. 집집마다 특징 있는 안주와 함께 병맥주를 파는 '가맥'집들이 있고, 개성있는 안주를 경쟁하듯 내놓는 막걸리집들이 있고,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의 콩나물 해장국집이 있고, 만원짜리 한정식 집이 있는가 하면 수랏상 버금가는 한정식 집도 있는... 자기 고장에 대해 자긍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찾아오는 곳 전주.  

다음에 가면 꼭 '다락방 감자탕집'에 가볼 테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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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11-01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전주가 참 좋아요. 가본 적은 한 번 밖에 없는데, 그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해서.
아. 또 가고 싶다 :)

레와 2010-11-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 저도 한번 가봤는데 첫인상이 좋았어요.
기회되면 한옥집에서 몇일 묵으며 가맥집도 가보고 아침에 콩나물국밥도 먹어보고..^^

언제 전주에서 깜짝 번개 이런거 해도 좋겠어요. ㅎㅎ

태그에도 공감백배!!

산사춘 2011-01-0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 전주, 전주!!!!!!!!!!!!!!!!!!!!!!!
전주 너무 사랑해요, 또치님도 사랑해요.
다락방님 감자탕도 이번 달 안에 사랑하려구요.
주변에 델구 가달라는 사람이 엄청 많은 전주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