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달된 한겨레21 표지를 보고는, 우편물 정리하던 손을 놓고 후배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안 그래도 웹검색하다가 "좋은 날이 오겠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배칠수의 성대모사를 듣고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샘이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던 참이었다. 말없이 그냥 나를 다독여주던 후배는 오늘 아침에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어젯밤에 퇴근하고 덕수궁 앞에 갔는데요, 부장님도 꼭 한번 갔다오세요. 좀 나아지실 거예요."  

오늘은 결국, 반차를 내고 대한문 앞으로 조문을 하러 갔다. 시청앞 지하철역 출구 벽에는 누군가 한겨레21 표지만을 붙여놓았더라... 그리고 벽을 가득 채운 추모의 글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글들이 왜 그렇게 많던지, <저는 민주주의를 거저 얻은 대학생입니다. 죄송해서 왔습니다> 하는 글, <대통령님, 잘 가세요. 그리고 하늘나라에서도 저희를 지켜주세요.> 하는 글을 보니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역시나 길게 늘어선 줄... 그러나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은 "지금은 상황이 괜찮아요. 1시간 정도 기다리시면 조문하실 수 있어요." 하면서 근조 리본을 나누어주셨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남녀노소 정말 다양한 분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나처럼 눈이 벌건 사람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슬쩍 창피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분향소 앞에 다다랐을 때는 내 옆에 선 처자가 흑흑 느껴 울기 시작하더라... 

그는 우리 시대가 함께 일궈낸 '공화국'의 상징이었고, 그 소중한 상징이 절벽에서 투신해 온몸의 뼈가 다 부서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내 몸이 부서진 것만 같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거였다. 나는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할일을 다했다며 더이상 돌보지 않고, 열심히 살지도 않았으며, 탄핵 때 지켜줬더니만 후반기엔 영 내 마음 같지 않다며 그를 미워하고 욕하기에 바빴다. 그가 끝까지 얼마나 악전고투하며 공화국을 지켰는지, 나는 이제서야 알았던 거다. 내 눈물의 의미는, 굳이 따지자면 그런 것이었다.   

조문을 마치고 잠시 정동길에 앉아 나는 기도했다. 처음에는 명복을 비는 말로 시작했으나, 결국 나는 "이젠 잘할게요 하느님. 더이상 이런 고통을 저희에게 주지 마세요. 제가 잘할게요..."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그리고 오늘 출근길에, 분향 순서를 기다리며... 많은 생각을 했다. 좀 그만 울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자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상상을 했다.

_ 보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노무 MB는 답이 없다. 멍청한 데는 약이 없거든. 조선일보가 지금은 방송국 하나 어떻게 좀 해보려고 안간힘 쓰며 참고 있는 거 같은데, 방송법이 통과되면 통과되는 대로, 통과를 못 시키면 또 그러는 대로 이런 무뇌아 세퀴 이젠 필요엄따! 하면서 MB를 버릴 것 같다.  

_ 혹시 올해를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내년 지방선거 이후 자리를 얻지 못한 MB 주위의 엽관배들은 그를 버릴 것 같다. 더이상 그 주변에서 얼쩡거릴 이유가 없잖아? 그들이 그네공주한테 가든, 70원 몽준이한테 가든, 오세훈한테 가든, MB 한테 불리한 자료들은 다 갖고 가겠지? 그래야 지들도 정당성 비슷한 걸 좀 얻을 거 아냐. 한나라당이 우왕좌왕 산산조각이 나면, 아이고, 정말 좋겠다.

_ 이쯤 돼도 MB는 뭐가 뭔지 모를 것이다. 계속 "형님"만 찾겠지.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MB가 쫌 불쌍하기도 하다. 걔는 아마 대통령이 어떤 건지도 모르고 엉겁결에 그 자리까지 갔을 것이다. 아우야, 국회의원 해보니까 이거 짱이더라, 하는 형님 말을 듣고 정치에 들어왔을 거고, 주변에 믿을 놈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까 이렇게 형님하고 돈만 믿는 거겠지. 쯧쯧, 불쌍한 인생... 

_ 그래도 18대 대통령은 그네공주가 될 것이다, 왜냐면 한나라당 고정표는 죽어도 불변이니까... 하는 말이 있기는 한데, 그네공주도 별로 대통령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공주 대접 받으며 살다 가고 싶은 인물인 듯?  MB만큼이나 철학도 없고, 별 실행력도 없고, 측근들도 별볼일 없다. 보수 진영에서 이런 인물을 과연 대통령 후보로 추대할까?  

_ 몽준이도 답이 아니다. 얘는 정말 잘못 자란 졸부 집안 자식의 전형이다.  

_ 그네공주 / 몽준 / 오세훈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더 멍청한 복병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 상상은 여기서 그만. 

_  별 근거 없는 희망적 상상일 수도 있는데(ㅠㅠ), 민주당은 정세균 체제가 박살날 거 같다. 그래야 옳다. 지방선거 전에 '노무현의 적자'인 누군가가 새로운 체계 아니, 새로운 정당을 꾸렸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건 유시민이 되지 않을까. 유시민이 전여오크랑 설전을 벌이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약간 짜릿짜릿한 기분이다.  

_ 3.5년 뒤든 8.5년 뒤든 정권이 바뀌면, 노무현같이 '화합' 이딴 거 고려하지 말고 지금 MB정권이 하는 그대로 돌려주면 된다. 보수의 개지랄? 하라고 그래. 니들끼리 놀아라, 난 개혁해줄게, 살아남을 놈은 살아서 발악들 해보시지?  차베스같은 냉혈한 인간이 필요하다.

_  3.5년 뒤, 대통령 후보로 유시민을 찍을까 심상정을 찍을까 고민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_ 유권자들은 바보라서, 냄비라서 지금의 이 슬픔을 다 잊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일은 쉽게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1, 2년 안에 잊기에는... 너무 뼛속 깊이 아프다. 1주기가 되고 2주기가 되고... 한 시대가 침몰하고 공화국의 상징이 부서져버린 이날은 절대 잊혀질 수가 없을 거다.  

_ 떡검찰... 니들은 진짜 사상 최대의 치욕이지? 조직개편을 안할 수가 없을 테니 다들 떨고 있겠지. (대한민국 '불멸의 신성가족' 멤버인 떡검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옷 벗기는 거라고 한다. 부장검사까지 무사히 지내고, 정치권에 줄 잘 대서 권력을 잡아야 하는데 그전에 옷 벗겨버리면 아마 죽고 싶을 거라고.)   

이런 상상을 하면서 버틴 하루. 조금 덜 울었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과 촌장, 정태춘, 이장혁, 루시드 폴 노래들만 듣다가, 오늘 저녁엔 Cold Play 의  Viva La Vida를 들었다. 3.5년 뒤, 이 노래를 들으며 광장에서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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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9-05-28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또치님 동명이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꼬님의 또치님이시군요.
우리 이악물고 하나도 잊지말고 잘 살고 있다가 그 끝을 꼭 같이 보아요.

또치 2009-05-28 01:59   좋아요 0 | URL
앗, 파비아나님... 왜 안 주무시나요...
흑, 근데... 저희도 지금 잠이 안 와서 날밤 까고 있어요 ㅠㅠ

마노아 2009-05-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덕수궁 앞에서 나눠준 저 표지의 한겨레 21을 보니, 왜 이리 아프고, 그 와중에도 사진은 왜 이리 멋지던지요. '노간지'라는 별명은 참 잘 지었어요. 태그에 공감해요. 이 악물고, 정말 잘 살 거예요...ㅜ.ㅜ

치니 2009-05-28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다가 웃었어요. '부장님'이라는 단어에 놀라서. ^-^;; 이 악물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또치 2009-05-28 13:0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쫌 듣기 어색한 부장님,이랍니다 ;;

코코죠 2009-05-28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치님 울지 마세요. 저도 또치님이 그만 울었으면 좋겠어요. 전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 거예요. 잊지 않을 거구만요. 전 모두 기억해서, 전부 기록하고, 죄다 전할 거예요. 그럴 거라구요. 그게 살아있는 자, 남은 자들의 몫이니까요. 가슴이 이토록 타는 듯 아파요. 또치님의 기도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요. 하지만 이제 그대 그만 눈물을 멈춰요. 우리는 살아있고,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유가 있어요. 할 일이 있어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