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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이토록 유쾌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언제던가?
이 소설을 읽다가 한바탕씩 웃어대지 않는 사람은 정말 사람도 아니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것은 파쇼독재의 원흉이고, 미국을 축출한 기술의 혁신-삼성에 대한 모독이다. (무슨 말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안다..)
앵벌이 출신 고아들이 취직을 해보겠다고 자기소개서 한편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본드속에 환상을 연기하는 배우의 이야기, 살아 움직이는 머리칼을 가진 소녀이야기, 바바리맨을 교화하여 천당을 가겠다는 한 열혈 처녀의 성령충만기, 깨진 재떨이 파편에 생긴 뒤통수의 상처로 인해 박대통령의 눈을 갖게 된 소년의 이야기... 이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이다.
이기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면 둘째가기 서러울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한 수 앞선다.. 더우기 신기한 건, 베르나르의 상상이 조금 터무니 없고, 비약적인 것이라면, 이기호의 상상은 허무맹랑하면서도, 정말 혹시 있을 법하지 않을까라는 혹함(?)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그래서, 한강공원이나 남산계단길에서 거닐다 우연히 백미러 사나이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지은이의 당부가 뒷머리를 곧추서게도 하는 것이다. 간혹, 마치 내가 본드를 한 상태에서 읽은 이야기가 아닌가 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 기괴함은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에 이르러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의 숭고함으로까지 인식된다. 그러면서 그는 언뜻언뜻 내비친다. 이나라의 밤거리를 교육제도를 군사정권을 마약문화를 거리의 부랑자를 종교를. 이 무겁고도 거창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유쾌함으로 이렇듯 통렬히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의 산만하고 해괴한 문장들은 겉멋들지 않고, 훈계하지 않고, 이 도도한 문제들을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이기호! 나에게 여태까지 그토록 절절한 문학의 효용을 일깨워준 이는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그를 주목하기로 했다.
혹여 시작부터 끝까지 랩으로 읊어대는 버니의 이야기가 다소 어지럽더라도, 환각과 현실이 맹렬히 교차되는 햄릿의 이야기에 구토증상이 일더라도, 제발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바란다... 정말 새로운 세계를 당신은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을 혼돈과 몽롱한 삐딱함으로 구분짓는 것은 부질없다. 제정신이든, 혼미한 정신세계에서든 내가 왜 웃고있는 지를 알아야 한다. 정말 웃겨서 웃는 건지, 웃을 수 밖에 없어서 웃는 건지, 아니면, 웃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웃는 건지... 그걸 말이다. 이기호의 상상은 그 모든 고행을 관통한 듯 싶다. 본드를 넘고, 보도방을 넘고, 박통을 넘어, 최루탄을 넘어, 간첩과 성경을 넘어, 끝내 말한다. 이 웃긴 세상이 그토록 신산하고, 재미없는 곳이란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