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글은 내게 늘 어렵다. 남들은 다 좋다고만 하는 그의 소설들이 내게 그렇게 어렵기만 하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책을 마치고 나면 무엇인지 무겁게 나를 지배하는 그것은 언제나 내가 그의 책을 다시 집어들게 하는 마력이다. 그것은 '오래된 정원'을 통해서도 가시지 않은 석연찮음이었는데, 이책을 통해 또다시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분단의 반세기를 우리는 또 아무런 분노없이 흘려 넘고 있다. 그래서 이젠 그만 외면하고도 싶겠건만 이렇게 시의적절하게(?) 다시 들추어내는 온갖 장르적 시도들은 언제나 아프기만 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떠나지 못하는 이땅의 원령들은 이제 그 화해조차 새삼스러워해 할 것 같다. 커져만 가는 시간의 공백은 자꾸만 많은 것들을 잊어가게 한다. 그래서 애써 들춰보는 이러한 역사들이 내눈엔 발악처럼 절실하기도 하다. 하여, 한의 세월동안 우리가 그나마 쌓아왔어야 한 이해와 용서, 화해의 틀은 온데 간데 없고, 나는 또 슬픈 악몽을 그려본다. 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있는 것은 너무 행복하다 싶어 갈라놓고 서로 부르며 찾다 애가 타서 죽게 하라고 지령했다는 해리슨.. 아이들은 어머니를 찾아 시멘트 바닥을 기어다니며 울어.. 팔굽과 무릎이 다 까지고 피가 나고.. 아이들이 계속 물을 달라 보채고 울자 문을 지키던 보초들은 바께쓰에 휘발유를 떠다 주고.. 신발에 휘발유를 떠먹고 몸부림을 치는 아이들을 보고 구경하며 웃은 미군.. 이어서 안에 불을 지르고.. 아이들을 불에 타서 죽고 연기로 가득 차서 질식해 죽고.. 다시 거기다 수류탄을 던진 그 짐승들... 이런 증오의 현장만이 눈에 짠하게 들어오는 나를 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원망을 해본들 이제 소용없을 것을 언제까지 이리 갇혀 나는 미워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많은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다. 황석영은 이 한판 씻김굿을 통해 화해를 갈망했다. 그의 원령들은 스스로 갈 곳을 찾았으나 아직 너무 많은 혼들이 길을 몰라하고 있다. 통일이 되고 다시 오십년이 지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었으면... 100년 전 사람들이 서로 미워해서, 아파했다고.. 하지만 지금 그들은 편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