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왈츠>에서 의사 슈크레타는 친구 야쿠프가 저지른 예기치 못한 살인을 눈 감아주며 우정은 정의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슈크레타가 정의를 따르자면 친구의 살인을 고발해야 한다. "정의란 인간적이지 않아요"(슈크레타) 세상을 살다보니 "정의 밖에서 사는 느낌"이라고. 야쿠프의 살인은 야쿠프 본인도 모르게 일어나는 농담에 가까운 살인, 쿤데라의 '농담'이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의 뒷표지에 나오는 시인의 말을 보면, 시인 진은영에게는 우정의 의미가 슈크레타의 그것과는 상반된다. 진은영은 모차르트가 다른 사람들이 넘을 수 없었던 경계를 넘은 것처럼 친구가 탁월성을 발휘해서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가주기를 염원한다. 자신은 살리에르가 되도 괜찮으니 함께 경계를 넘어보자고. <우리는 매일매일>에 실린 '나의 친구'라는 시에는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그것을 믿자, 숱한 의심의 순간에도
내가 나의 곁에 선 너의 존재를 유일하게 확신하듯
친구, 이것이 나의 선물

새로 발명된 데카르트 철학의 제 1원리다.

  


문학의 정치성을 연구한 <문학의 아토포스>나 문학 상담과 시 쓰기에 관한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에서, 그리고 시인이 최근 번역한 실비아 플라스의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에서도 친구와 "단어와 단어로 맺은 우정"(심보선, <훔쳐가는 노래> 뒷표지)에 대한 강조를 읽을 수 있다. 내 마음을 읽고 친구와 시를 쓰며 '어둠'을 뚫고 나가서 빛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여기서 글을 끝 맺는다면 참 아름다울 텐데 조금 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정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고, 어느 쪽 얼굴이 더 많이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연봉 9천만원을 받는 사람들의 시위(인천국제공항 사태), 행복 주택 반대 시위를 보면, 여기가 바로 아귀다툼이 펼쳐지는 지옥이다. 슈크레타식 우정 때문에, 산업 재해나 공장식 축산, 지구 온난화 등을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별의 왈츠>의 끝 부분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면, 우정이 뭔지 잘 생각해보자고, 슈크레타 당신이 말하는 그게 진짜 우정이냐고 추궁할지도 모른다. 추악한 세상에서 추악한 채로 남는다면 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아니기 때문에 추악한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 잘못된 우정을 소환한다. 


소설가의 진실을 믿을 것인가, 시인의 믿음을 믿을 것인가. 몇 주간 생각만 해오다 글로 써보았는데, 결론이 안 나고 고민은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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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집에 내려 갔다가 도서관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아무튼 시리즈의 비건, 외국어, 술을 빌려 읽었다.

  <아무튼, 비건>은 <채식의 철학>에 이어서 채식주의에 관심을 이어가려고 손에 집었다(<채식의 철학>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FW)의 에세이집에 실린 '랍스터를 생각해봐'와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있다). 나는 현재 기준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그런데 왜 채식주의자의 글에 관심이 갈까. 우선 DFW의 '랍스터를 생각해봐' 각주에 적힌 주소를 쳐서 들어간 동물권 단체의 웹사이트에서 본 동물 가죽을 벗기는 동영상이 떠오른다. 또한, 고향 집이 시골이고 집에 여러 동물들이 있어서 김한민 작가가 말하는 '동물의 얼굴'을 기억하라는 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겠어서 고민이 된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개와 관련한 기억처럼, 형태는 다르지만 개가 죽임을 당하는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채식주의자들이 쓴 책에는 '언행일치'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독특한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언행일치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흥미롭다(언행일치가 어렵고 드물기 때문에). 채식을 하려고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애쓰는 모습은 <채식의 철학>보단 <아무튼, 비건>에 더 많이 담겨 있다. <채식의 철학>은 논리를 따라가는 철학서인 반면, <아무튼, 비건>에서 김한민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가운데서 어떻게 채식을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김한민 작가가 '유럽파'라는 점은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또한,<채식의 철학>과 <아무튼, 비건>의 목소리의 열정도 비교해볼만 하다. <채식의 철학>의 토니 밀리건이 육식주의자의 의견도 다루며 육식주의를 온건한 논리로 격파하는 반면, <아무튼, 비건>에서 김한민 작가는 육식주의자의 잘못된 편견을 환경 운동가의 열정적인 어조로 비판한다. 나는 그 열정이 좋았지만, 토니 밀리건은 열정적인 어조를 경계한다. 김한민 작가의 입장에서 한 문장 더 쓰자면,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가 아주 적은 소수 집단이어서 열정적인 어조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아무튼, 외국어>는 조지영 작가가 배웠던 언어 중 프랑스어와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손에 들었다. <아무튼, 외국어>를 읽으면서 흥미롭다고 느낀 점은 작가가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그런지 한국어 문장도 독특하다는 점이었다. 쉼표를 많이 쓰고, 문장 구조도 독특하다. 조재룡 교수는 <번역하는 문장들>에서 김승옥이나 배수아 작가의 번역투 문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조지영 작가가 쓴 <아무튼, 외국어>에서도 외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의 독특한 문장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서 조지영 작가가 좋아했던 한국 작가들의 목록도 읽을 수 있었다. 독서와 외국어 공부가 작가의 문장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참고로, <아무튼, 외국어>에서 영어 이야기는 마지막에 잠깐 나오고, 프랑스어(작가의 대학 때 전공),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이야기가 각 챕터를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아무튼 시리즈의 근간 목록에 <아무튼, 영어>가 있다. 한국인 독자에게 영어는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을 확보할 만한 주제일 수도 있다. <아무튼, 외국어>는 여러 외국어를 '적당히' 배우는 작가의 취미를 다룬다. 조지영 작가는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왜 영어에는 적당히 만족하지 못하는 지도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영어가 그저 여러 외국어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아무튼, 술>은 도서관에서 빌릴까 말까 고민한 책이었다. 김혼비 작가의 전작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먼저 읽고 싶었지만, 도서관에 없어서 빌리지 못했다. 비건과 외국어에 비해 술에 관심이 적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맥주를 한 캔씩 자주 마신다.

  웃음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아무튼, 술>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아무튼, 술>에는 웃음보다는 웃김이라 표현하고 싶은 진솔한 글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웃김 속에 슬픔과 애환도 담겨 있다. 웃김과 슬픔, 그게 술의 특징 같기도 하다. 애주가이지만 주량이 많지는 않다는 점도 나와 비슷해서 공감이 갔다.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며 풍류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독일 아마존 베스트 셀러로 소개된 <어느 애주가의 고백>을 읽고 아빠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아무튼, 술>이 훨씬 좋았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과 달리 <아무튼, 술>은 술을 권하는 책이어서 아빠에게는 전해 줄 수 없다.














  <아무튼, 비건>과 짧은 시차 속에 읽다 보니 <아무튼, 술>에 나오는 안주들이 눈에 밟히긴 했다(나도 고기를 먹으면서도). 또한, <채식의 철학>에서 토니 밀리건은 술 속에 담긴 동물 성분을 지적하며 완전 채식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물 성분이 담겼다는 술의 종류는 책을 들춰보고 확인해야 적을 수 있는데 책을 도서관에 반납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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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 세 권을 읽었을 때 반복해서 나온 말이 글을 거창하게 쓰지 말라는 거였

는데, 그 글을 읽고 얼마 후 글을 쓰다가 초반부에 거창한 문장을 적어버렸다. 어제인가 그 표현을 지웠지만 꽤 많은 사람이 읽은 후였다. 내가 쓴 거창한 문장의 일부에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너무 거창하다)이란 말이 들어갔다. 실수하지 않았다면 이성복 시인의 조언을 잊어버렸을 테니 좋게 생각하려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도 적지 않다.

 







 


 

 

 

 

 

 

  이성복 시인은 글을 쓰는 기술보다는 '태도'를 강조했다. 좋은 태도는 한 권의 책만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태도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해야겠다. "글쓰기에서 기본이란 '대상'과 '독자'에 대한 배려예요."(<극지의 시> p.135) 좋은 내용이 많지만 이 문장을 자주 생각한다(책 내용은 항상 금방 잊힌다. 그리고 곧 어리석어진다.) 이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은 이유는 내가 타인을 '깔보는' 굉장히 안 좋은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타인을 깔보는 태도를 가진 글쓴이에게야말로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예전에 읽었던 '타자의 탁월성을 인정하라'는 말을 잊지 않으려고는 하는데, 타인을 깔보는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직 성찰이 아주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레비나스는 어려울 것 같지만 반드시 공부하고 싶다. 그리고 최근에 지인이 (고맙게도) 지적해줘서 내가 대화할 때 공격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화할 때 어리석은 태도를 보인 건 분명 공격성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소극적인 사람의 공격성은 냉소, 비웃음, 깔보는 태도 등을 통해 드러난다. 이게 좀 더 나아가면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건강하지 못한 이 태도를 성찰하고, 공격성을 긍정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대중에게 큰 희망이 없다고 보았다(반면,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극복하려 하는 랑시에르는 대중의 역량을 인정한다). 회사원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묶여 지내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임금 노예'다. 짧은 여가 시간에 시간을 떼울 수 있는 건 휴대폰과 영상매체 등이다. 주된 관심사는 재산 축적으로 흐른다. 회사원 또한 여러 계층으로 나뉘는데, 정규직 중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달가워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 따르면, 독일 나치는 유태인을 여러 역할로 나누고 차별 대우해서 유태인 지배를 좀 더 손 쉽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원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사회가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각자 도생하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적응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비난조의 글을 쓴다면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아닐까? (무엇보다 회사원들은 고통받고 있고, 정말로 문제되는 구조와 회사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최근에는 퇴사 관련 책이 많이 나오고 읽히고도 있다.) 이성복 시인은 내가 아니라 타인을 아프게 하는 글은 쓸모 없다고 했다. 타인이 아니라 내가 아파야 한다고. 다른 얘기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관점에서) 극단적으로 보면 알라딘 페이퍼를 쓰는 행위 또한 알라딘 마케팅을 돕는 자발적인 복종에 가깝다. 하지만 마케팅이든 뭐든 글쓰기 실력을 늘리려면 실수를 반복하면서 써야한다. 이러한 고민 하에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삶과 죽음>을 읽어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좋아하는 책인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괴테 또한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곧 나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문장이 떠오른 이유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보는 걸 그만 두고 TV 시청도 웬만하면 줄이자고 최근에 (다시) 다짐했기 때문이다. 위 문장은 '아름다운 걸 보면 의식의 균형을 얻을 수 있다'는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의 내용과도 통한다. '인스타그램 감옥(insta jail)'이란 표현도 있지만, 나는 지금 TV 감옥에 갇혀 있다. 가족들이 항상 TV를 켜놓고 나는 그 곁을 지나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독립해야 한다. 또한 이 글을 밤 11시 넘어서까지 쓰고 있지만, 낮에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10시 이후에는 전자기기에 열중하지 않는 게 '의식의 균형'에 도달하는 데 도움된다(너무 꼰대 같은 말인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내가 된다고 해서 좋은 것만 보고 살수는 없다. 딴 얘기 같지만 좋은 것만 보면 어리석은 정신승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철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인간은 죽고 병들고 타인의 고통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아름다움이란 말에 긍정적인 것만 포함되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나의 죽음과 타인의 삶에 성숙하게 다가가는 것도 아름다움의 일부 아닐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며칠 전 신문에서 읽은 글에서 배우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런 태도를 가지려면 얼마나 성찰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임종진의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친구>라는 글에 소개된 '안양숙' 님). 어쩌면 타인과 사물을 우선으로 두고 행동해야만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사서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춘분 지나고까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내적으로만 성찰하지 말고, 실수할지라도 새로운 사람과 사물을 만나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무튼 나도 '스나가 이치조'처럼 고민만 하다가 얼마 후 여행을 떠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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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토요일마다 듣는 수업을 마치고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다음에 간다면 평일에 갈 것 같다). 5월에 진행되었던 예매에 참여하지 못해서(그런 기간 제한이 있는지 몰랐다) 줄을 서서 현장 티켓을 샀다. 줄이 길었지만 표를 판매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줄이 금방 줄어들었다. 티켓 가격은 6000원이었고, 표에는 3000원 책 할인 쿠폰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출판사는 '현암사'와 '아포토스'(아마도 그렇다)였다. 현암사는 1945년 설립되었다가 1951년 회사명을 바꾼 아주 오래된 출판사이고, 아침달은 몇 년 전 생긴 신생출판사인데 시집을 많이 발간한다고 자주 언급됐던 것이 기억이 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현암사의 북디자인이 뭔가 다른 출판사보다 한 차원 높아 보였다. 현암사에서 메모한 책은 다음과 같다. 현암사에서 책을 한 권 구입했는데, 책은 마지막에 샀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진행되는 이 글 마지막에 나온다.

 

1. 현암사

 

-신모래 <나는 무척 이야기하고 싶어요>(현암사)

 

-로이스 W. 배너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현암사)

 

 

-요슈타인 가아더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현암사) : 마케터로 보이는 직원분이 내 옆에 있던 손님에게 열렬히 추천해주는 걸 엿들은 책이다. 


2. 착각

 

  현암사와 함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스가 아침달 출판사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부스가 붙어 있었거나 출판사들이 너무 많아서 착각했던 것 같다. 도서전 글을 쓴 지 5일이 지난 6월 28일 신문 서평란을 보다가 우성준의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상점>을 발견했다. 도서전에서 선공개한 책이라 검색해도 며칠 간 나오지 않았다. 이 소설 옆에 놓여있던 책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아포토스 출판사라고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다. 그 책들도 도서전에서 선공개했던 것일까? 여러 출판사들이 모여 있던 부스였을까? 도서전 참여 출판사 목록에 아포토스 출판사가 없는 걸 보면, 그 매대는 여러 소규모 출판사가 모여 있던 곳이거나, 아침달 출판사에서 다른 출판사에 내준 장소라고 추측해본다. 한편, 아토포스(atopos;άτοπος)는 ‘어떤 장소에 고정되지 않은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라고 한다. 뭔가 내가 착각하고 있는 상황과 닮아 있다. 혼잡했던 도서전에서 그 부스는 내게 아토포스로 남아 있다.

 

-우성준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상점>(아토포스) : 이 책 옆에 놓여 있던 에세이들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부스의 인구밀도가 높기도 했고, 둘러볼 곳도 많아서 이 책 출판사로 검색하면 나오리라 보고 지나쳤는데, 도서전 며칠후에나 이 책이 공개됐고, 다른 책들도 아직 찾지 못했다. 

 

3. 아시아 독립출판 부스

 

  아시아 독립출판 부스는 전시 후반부에 있었고 다리가 아파서 자세히 보지는 살펴 못했다. 독립출판 부스는 작은 매대 형식으로 전시했는데, 그 앞의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아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이 외에도 전시 후반부 노르딕 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책들을 소개한 부스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 최유수 <사랑의 몽타주> (디자인 이음)

 

 -김은비 <스친 것들에 대한 기록물>(디자인 이음)

 

-강민선 <상호대차>(이후진프레스) : 저자의 이력이 흥미로웠다.

 

-앨리슨 벡델 <펀홈>(움직씨) : 이 책을 독립출판 부스에서 봤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맞을 것이다. 이 책의 후속작이 몇 달 전에 나왔다.

 

-쥘 베른 <녹색광선>(frame/page) : 이 책은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녹색광선>을 보고 검색했던 적이 있는데, 독립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는 건 몰랐다.

 

-Eden Barrena <Promise of Blooming>

 

-Hai-Hsin Huang <There is No Future> : 제목이 인상적이다.


-Yuri Hsegwa <Since I First Met You>

 

4. 국제관

  국제관은 정말 스치듯 살펴서 발견한 책은 한 권뿐이다. 두 권이긴 한데 한 권은 독일어 서적이라 읽을 수 없다. 전시를 본 건 독립출판 부스가 먼저였는데, 발견한 책이 더 적어서 국제관을 나중에 적는다.

  헝가리관에선 헝가리 전통복장을 입은 헝가리 사람들과 아이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저항의 멜랑콜리>(알마) : 제발트의 추천사가 인상적이었다.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 IRENE DISCHE <SCHWARZ UND WEISS> : 이 책은 독일(기억상으론 그렇다)에서 북디자인상을 탄 책이라는데 표지가 정말 좋았다.

 

5. 기타 책들 : 이 중에는 신문 서평 등에서 본 책도 있었지만 메모해두었다.

 

킴벌리 아르캉, 메건 바츠케 <단위 세상을 보는 13가지 방법>

P.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김진관 <홀로서기 수업>

알렉스 벨로스, 에드먼드 해리스 <수학으로 만나는 세계>

페르닐라 스탈펠트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까?>

남영신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


박홍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 이 책의 부제가 인상적이었다(부제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부제는 '노동자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나키 유토피아'

 


6. 책 구입

  나가기 전 현암사 부스에 다시 들러 나쓰메 소세키 전집의 첫 문장들을 하나 하나 읽어봤다. 그중에서 <춘분 지나고까지>의 첫 문장이 가장 좋았다. "게이타로는 얼마 전부터 해온 별 성과도 없는 취직 활동과 그 분주함이 다소 지겨워졌다." 얼마 전 한 면접에서 내가 몇 개의 회사에서 떨어졌다고 말하자, 한 면접관이 'ㅇㅇ씨가 입사를 거부한 것 아니에요?'(기분 나쁘지 않았다. 과장하자면, 그는 진실을 말해주는 현자 같았다.)라는 얘기를 들었고, 나는 진로를 바꿨다.

  원래 <마음>이나 <그후>를 살까 했는데, 도서전에서 새로 알게 된 책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춘분 지나고까지>를 구입했다. 책과 함께 부채와 마그네틱, 엽서 등을 받았다.

 

-나쓰메 소세키 <춘분 지나고까지>(현암사)

 

7. 대담, 문학 자판기, 성심당

  책을 사고 나갈까 했는데, 전시 후반부를 너무 대충 본 것 같아서 전시장 끝에 뭐가 있는지 보러 갔다. 그곳에서 대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담 후반부 15분 정도를 들었다. 내가 들어간 때는 유진목 시인이 낭독을 마치고 시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임솔아 시인이 낭독을 했고 시에 대해 설명했다. 나머지 두 분은 문학평론가 한 분과 시인 한 분이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찾아보니 안희연 시인, 아마도 강지희 평론가). 임솔아 시인은 인상이 차갑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유진목 시인은 <젠더 허물기>의 1장 '나 자신을 잃고'의 일부를 낭독했다.

 

-유진목 <식물원>(아침달)

 

  성심당 빵을 먹어보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집으로 나를 초대해준 분들에게 전하려고, 홍차빵과 파이만주를 하나씩 샀다. 성심당에서는 책 몇 권을 출판했다고 한다. 

  문학 자판기에서 짧은 글귀, 긴 글귀 하나씩 뽑았다. 그 전에 본 자판기는 줄이 너무 길어서 못 뽑고 여기엔 줄이 없어서 바로 뽑았다. 아마도 어린이용 글이어서 줄이 없는 것 같았다.

  수많은 책 중에 내가 메모한 책은 아주 적었다.  

  지하철을 타고 지난 몇주간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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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WORD POWER made easy :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고급편 WORD POWER made easy
노먼 루이스 & 윌프레드 펑크 지음, 강주헌 옮김 / 윌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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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출판사에서 원래 제목을 바꿨습니다. 고급편이 아니라 요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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