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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우리 역사 - 개정판 ㅣ 거꾸로 읽는 책 13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푸른나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쓴 책이라 기대를 좀 하고 책을 봤다. 초판 14쇄에 개정판까지 나왔으니 꽤 많은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읽은 책이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권장도서로 지정까지 했다.
첫째 마당 원시 공동체 사회부터 넷째 마당 삼국 시기까지 서술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다섯째 마당 남북국 시기 신라부터 조금 억지스런 내용이 나온다.
석굴암과 불국사 같은 불사에 국가의 힘을 모두 동원했는데, 여기에는 민중의 피땀으로 생산된 엄청난 재보가 투여되었다는 얘기까지는 수긍할 수 있지만, 석가탑에 얽힌 아사녀의 슬픈 설화가 왜 왕족을 지키는 신라 호국불교문화의 성격을 보여주는 건지 모르겠다. 더욱이 "석굴암 본존불의 근엄함과 이상미가 왕을 상징하고, 악귀를 밟고 있는 사천왕과 힘자랑하는 금강역사, 팔부중상이 귀족들의 특권 유지를 위한 수호신으로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현"(110쪽)이라니...
불교경전에 나오는 설법장의 모습을 그 시대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불교도상과 양식에 따라 구축한 종교상들일 뿐이다. 팔부중상은 호법신이 아닌 청중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거의 모든 불교 경전에서 팔부중은 부처설법의 청중으로 나오지 무슨 수호신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미술을 통해 역사를 보겠다는 취지는 알지만 이런 식의 호도는 곤란하다.
호족들의 영향을 받아 세운 부도들을 "중앙의 특권에 도전하는 지방 호족 세력의 문화적인 특색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부도는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불교 조형물의 틀을 깨고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다."(116쪽)고 해석했는데, 부도 양식이나 거기에 돋을새김된 조각들에는 신라 왕릉 호석에 보이는 십이지상과 같은 중앙(경주)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는 설도 있다. 정형과 규격에서 벗어났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고려 시기로 오면 뜬금없는 서술도 눈에 띤다. 청자의 아름다움을 서술하다가 갑자기 이자겸이 읊었다는 시를 얘기하고, 이 사람이 농민을 괴롭히고 저 혼자 고귀한 척했다면서 왕과 문벌귀족들의 풍류 뒤에는 백성들의 뼈아픈 고통이 있었다고 하면서 마무리한다. (130~132쪽)
이자겸 얘기나 백성들의 고통을 얘기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청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다가 그 당시 사회상으로 넘어가는 서술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뒤에는 또 고려 무신들이 상감청자 문양을 좋아했던 이유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민중들의 희생과 그에 대비되는 속세를 떠나 한가롭게 이상세계에서 노닐고자 했던 무신들의 안일함을 말한다.(136-139쪽)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지배층의 방탕함이 위대한 공예품을 낳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불화를 서술하는 곳에는 오류도 보인다. 아미타내영도에서 아미타 여래 눈에서 빛이 나와 죽은 사람을 맞이하여 극락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146쪽), 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에 있는 계주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미륵하생경 변상도에 나오는 왕과 신하, 시종, 백성들의 신분 차이가 그림 속에서 옷차림이나 위치로 반영되어 있다고 했는데(147쪽), 이것도 경전내용을 충실하게 서술한 것일 뿐 확대해석은 곤란하다.
조선 시기로 넘어가서 분청 사기가 신진사대부의 기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 서술은 아예 잘못되었다. 분청사기는 청자에다 백토만 덮어씌운 자기다. 따라서 분청사기만으로는 그 어떤 사회적 해석도 위험하다. 그러면 모든 청자에 그런 해석을 덧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초기 인화문(도장무늬) 분청사기는 사대부가 아닌 왕실에서 쓰인 자기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170쪽에 나오는 "녹지(綠地 푸른 숲) 무늬"와 "조화(鳥花 새와 꽃) 무늬" 분청 운운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다. "박지(剝地 배경을 파낸)"와 "조화(彫花 무늬를 파낸)"로 고쳐야 한다. 좀더 길게 설명하자면 박지기법은 백토를 바른 뒤 배경을 파내어 무늬만 남기는 것이고, 조화기법은 백토에 무늬를 음각하는 것이다.
진경산수화를 서술하는 곳도 조선성리학과 노론 세력과 연결하여 서술하고만 있는데(185-186쪽), 조선성리학보다는 오히려 실학 사상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덧붙이면 좋겠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설명한 192쪽도 아쉽다. 도대체 뭐가 "상것들이 어찌 흉내라도 내겠느냐는 우월감과 기득권 수호 의식을 나타낸 것"인가? "사대부 계층의 회화인 남종화의 서권기, 문자향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사의 정신의 강조는 바로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내세워 다른 계층과 공감이나 화합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자부심이자 또한 위기 의식의 반영이었다."는 말도 그 자체는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세한도>를 말하면서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너무 억지이며, 사대부 계층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이 아닌) 쓸데없는 혐오감만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김정희가 귀양살이 할 때 다른이는 다 등돌려도 제자 이상적은 변함없이 김정희를 찾아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그림에 어떻게 그런 해석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개정판을 내려면 미술사학계의 성과를 더 많이 살펴보고 이를 반영한 다음에 내야하는데, 너무 성급하게 낸 것이 아닌가 한다.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아 비판만 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세종이 왕실이나 지배층의 권위를 높이고 특권을 옹호하기 위해 한글과 여러 책들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나 각각의 시기마다 백성들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서술한 것은 폭넓은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회 비판적 서술들은 미술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류층은 이렇게 누릴 때 민중들은 쎄빠지게 고생했다>는 결과론은 가능하지만 미술과 사회구조에 꼭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책 편집을 보자면 어려운 용어를 보충 설명하기 위해 ( )를 너무 남발하여 글을 읽을 때 맥이 자주 끊긴다. 각주나 미주로 처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글상자를 마련하여 옆에다 설명을 붙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글월도 수월하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좀더 쉽게, 입말도 쓰면서 부드럽게 서술하는 게 좋겠다.
완전하게 다시 개정해야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