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와 수치의 역사 까치글방 144
한스 페터 뒤르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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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투스는 '여성이 옷을 벗으면 수치심도 벗어버린다'고 말했다 한다. 후일 이 말을 플루타르코스가 언급하면서 '여성은 옷을 벗으면 수치심으로 몸을 감싼다'라고 옹호했다던가...

사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수치심은 직립보행의 산물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똑바로 일어섬으로써 치부가 정면으로 돌출하게 되면서 몸가리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성서에서는 이런 과정을 원죄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지만 말이다. 실제로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관찰해보면 아주 재미있는 것이 많이 발견된다. 네 발로 걸어다니는 동물들의 경우 치부가 드러날 염려가 없다. 설사 드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꼬리가 이것을 다시 한번 가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동물의 치부는 발정기가 아니면 정확하게 볼 수 있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따로 발정기가 없는 대신 성욕이라는 본능이 작용함으로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이런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도덕이라는 껍질에 의해 순화되었을까? 과연 인간은 옷을 벗으면 수치심도 벗어 던지는 人面獸心의 포유류일까, 아니면 수치심으로 자신을 감싸는 惻隱之心의 동물일까. 유럽인들이 이런 인간의 성적인 부분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의 성장과 괘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면서 그곳에서 자신들과 다른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들을 접촉하게 된다. 한 예로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치부만을 겨우 가린 사람들을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인간이 동물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음직하다. 이들은 이들 원주민들에게 유럽적 자비를 베풀어 옷이란 것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치부를 가려주었지만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열대우림의 기후에서 유럽인들의 옷은 항상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이것은 결국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질병을 양산하는 환경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입고 있던 옷은 환경에 가장 적합한 옷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유럽인들의 오만은 자신들이 침탈한 모든 지역에서 무작위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들은 옷을 입고, 벗는 것의 차이를 문명과 반문명의 구도로 몰고갔다는 점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단기적인 효과를 발휘하는데는 아주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많은 문제점이 터져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식민지 지배자인 유럽인들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식민지의 모든 문화적 환경을 파괴한 다음 무엇 때문에 민속촌과 같은 것을 만들어 자신들이 그렇게 없애고 싶어하던 것들을 전시하고 공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유럽인들을 처음 접한 아시아인들의 충격은 그들보다 더했으면 했지 조금도 덜하지는 않았다. 아시아인들이 본 유럽인들은 무례하고, 더럽고, 냄새가 나는 부류였다. 이런 부류는 아시아 권에서는 짐승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즉 아시아인들은 유럽인들을 처음 보았을 때 걸어다니는 짐승으로 보았던 것이다. 단 하나 그들이 아시아인들보다 우월했던 점은 총이라는 신병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유럽의 관점에서 본 수치라는 개념이 총이라는 무기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입된 하나의 허상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있다. 유럽은 이 총을 산업혁명이라는 사건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수치심이란 감정을 집단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축소하여 버렸던 것이다. 이런 유럽적 축소는 '이중규범'이라는 모순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무력과 힘이 자기 정당화 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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