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시 경의 모험 그리폰 북스 4
랜달 개릿 지음, 강수백 옮김 / 시공사 / 199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장마철에는 추리 소설을 읽으며 더위와 끈끈함을 물리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래서 추리 소설 하나...

신의 은총에 연원한 잉글랜드 국왕, 아일랜드의 영주, 노르망디와 아키텐의 공작, 앙주의 백작인 존은 대주교, 주교, 수도원장, 백작, 봉신, 재판관, 삼림관, 주장관, 집사, 종복, 그리고 모든 대관 및 충성스러운 인민에게 인사를 드린다. <마그나 카르타에서>

존 4세 폐하, 신의 은총에 의해, 잉그랜드, 프랑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뉴 잉글랜드 및 뉴 프랑스의 국왕, 황제, 신앙의 수호자, ... <다아시경의 모험 가운데 두 눈은 보았다 중에서>

위의 두 문장은 잉글랜드의 국왕을 소개하는 통상적인 문구이다. 장황한 수식어 가운데서 느껴지는 그 유사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 소설은 12세기에 창건된 프란타지넷트 왕가가 800년 동안 존속한다는 가정하에서 씌어진 대체 역사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마그나 카르타 이후 잉글랜드 왕실에서 존이란 이름은 그리 선호되지 않았다. 오히려 에드워드나 윌리엄과 같은 이름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만큼 존 이란 이름은 왕의 외형을 나타내는데 유약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는 존 4세라는 칭호에서 보듯 그 무능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어떤 의지가 보이는듯 하다.

이 대체 역사 소설을 읽으려면 플란타지넷트 왕가의 근원과 중세시대 그들이 차지했던 영토를 알게 된다면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할 것이다.  중세 시절 잉글랜드는 존 왕의 치세 시절 영토가 잉글랜드, 아일랜드와 프랑스의 2/3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토만으로 따진다면 플란타지넷트 왕가는 유럽 최강이었다. 하지만 존 왕이 죽었을 무렵 영토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로 축소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프랑스와 북아메리카와 캐나다를 차지한 방대한 제국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무의식적인 관념은 이차세계대전을 통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미국의 동맹으로 그 유사한 모습이 드러났었다는 점이다. 그 결합된 제국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위대한 앙쥬제국의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저자는 이 소설에서 러시아 대신 폴란드를 앙쥬제국에 대항하는 동쪽의 지배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중세를 통해 폴란드는 위대한 왕국이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왕국은 도이칠란트와 러시아의 협공으로 그 위대성에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 위대성이 지속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즉 유럽은 노르만-플란타지넷트 왕가, 아직껏 분열되어 있는 게르만, 동방의 폴란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계는 랜달 게럿이 바라보는 세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앵글로-색슨들이 그랬으면 하는 세계관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묘하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이유는 그 중세적인 현대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연장된 중세라는 개념을 통해서 현대 속의 중세, 혹은 중세 속의 현대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마술과 문명의 이기가 적당하게 뒤섞인 안개가 자욱하고 습기가 많은 앙쥬제국의 모습은 범죄영화에서 슬쩍 보여주는 검시실의 해부되기 직전의 시신처럼 우리의 호기심을 한껏 부풀린다. 그리고 그 부풀림은...

이 책은 렌 데이튼Len Deighton의 SS-GB:Nazi-Occupied Britain 1941과 함께 대체역사소설의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렌 데이튼이 현대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랜달 게럿은 중세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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