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 마그나카르타의 해
존 길링엄.대니 댄지거 지음, 황정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大憲章으로 불리우는 마그나 카르타에 잉글랜드의 존 왕이 러미니드 초원에서 서명한 것은 1215년 이었다. 우리들은 존 왕이 서명한 이 문서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많은 학생들이 대헌장을 '군주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한 민중들의 典據'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이런 일반적인 견해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존 왕의 실정에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이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이 문서에 강제적으로 서명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 당시 귀족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대헌장의 첫머리 10개조에 나와있는 상속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확인의 반복이 문서 전체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후대에 우리들이 대헌장의 원칙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신보호'에 관한 것은 대헌장의 39와 40에 나와있을 뿐이다. 그것도 전체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분량이 아니다.  

39. 자유민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와 같은 신분의 동료에 의한 합법적 재판 또는 국법에 의하지 않는 한 체포, 감금, 점유침탈, 범익박탈, 추방 또는 그 외의 어떠한 방법에 의하여서라도 자유가 침해되지 아니하며, 또 짐 스스로가 자유민에게 개입되거나 또는 관헌을 파견하지 아니한다.

40. 짐은 누구를 위하여서라도 정의와 재판을 팔지 아니하며, 또 누구에 대하여도 이를 거부 또는 지연시키지 아니한다.

이 두 조항은 후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당대에는 이것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존 왕은 물론 귀족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조항은 단지 귀족들이 자신들의 불법을 자신들이 재판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왕이 재판을 돈을 받고 유리하게 만들거나 지연시켜 재판 당사자를 파산에 몰아 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즉 이 두 조항은 민주주의의 원칙이라기 보다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귀족들 역시 왕이 이 문서에 서명은 하지만 잘 이행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귀족들은 이 문서를 통해 아무리 변덕스런 왕일지라도 행위의 예측이 가능한 정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래서 대헌장은 수정되어 재발행되어 전국의 주법원 회의에서 돌려 읽었고(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대헌장은 1215년판이 아니라 1225년 발행본이다), 시몽 드 몽포르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 법령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공표하였다. 그리고 대헌장은 교회의 정문에 복사본을 못으로 박아 걸어두었다. 이후 잉글랜드에서는 왕의 통치가 정도를 벗어날 때마다 인민들은 대헌장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대헌장을 통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저항권'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들은 대헌장을 잘못한 군주가 있다면 이에 대해 인민이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대헌장에는 이런 내용을 언급한 조항은 없다. 저자의 말대로 한다면 저항권이 명시되어 있는 대신 '오직 완벽한 저항을 나타내는 사려깊은 분별력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할 수 있다. 사려깊은 분별력, 바로 이것이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이 8백여년이 다되가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 책의 말미에는 대헌장 63조항이 모두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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