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속의 악마
장 디디에 뱅상 지음, 유복렬 옮김 / 푸른숲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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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쓴 장-디디에 뱅상은 생물학자이며 의사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바라보는 시각은 의학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작가인 장-디디에 뱅상은 악과 인간의 관계를 생물학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육체를 끊임없이 해부하고 관찰한다. 이런 그의 방법은 신학자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라 하겠다. 신학자에게 악이란 윤리적인 문제지만 과학자에게는 생리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즉 신학자들은 악에 대한 끊임없는 참회와 그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신의 존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반면 과학자들에게 있어 악은 뇌의 구조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뇌의 신비가 완전하게 해석되지 못한 현재에 있어서 악은 과학자들에게는 명료한 것이라기 보다는 불명확한 것이다. 반면에 신학자들에게 있어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분명한 명제로 나타난다. 여기서 선이란 무엇인가는 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정의한다. 즉 자신들이 모범으로 삼는 사람의 길을 따르는 것이 종교의 선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따르지 않는 것은 악이되는 셈이다. 하지만 뱅상의 논의에 따르면 과학에서는 선과 악의 문제를 종교적인 차원에서처럼 명료하게 구분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뱅상은 인간의 악에 대해서 죽음이란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 죽음 앞에서 인간은 악과 타협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본다. 그 타협의 다야한 유형은 문학의 다양한 장르에서 찾아 볼 수 있기도 하다. 이것은 종교에서 언급하는 영원한 삶의 시작인 죽음과는 대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뱅상은 악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로서 인간을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성서적인 해석을 거부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는 것은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과 맥이 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뱅상은 서구 사회가 기독교적 사고관으로 인해 신의 존재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인간들이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악마 역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인간은 영장류로서 투쟁을 통한 진화의 과정에서 승리한 개체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의 은총이 있었다면 악마의 훼방 역시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신학이 신의 존재증명에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듯이 자신의 생물학은 '악마와 관계하는 인간학'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신과 악마는 형이상학 존재가 아니라 형이하학적으로 우리에게 와있다는 입장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을 찾기 위해 인간이 노력하는 것처럼 악마와 타협하기 위해 일탈행위를 하는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뱅상은 그것을 이 책의 제목처럼 '마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과학적 접근을 통해 종교적으로 회귀한 것일까?

* 쿨리지 효과란 미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미 서부의 한 농장을 방문한 쿨리지 대통령은 부인이 갑작스레 달려와 황소 한 마리가 하루 동안 40마리의 암소와 교배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야 당연하지, 여보. 파트너만 바뀐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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