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무협사 동문선 문예신서 115
진산 지음 / 동문선 / 1997년 2월
평점 :
절판


<중국 무협사>는 좀 특이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역사를 무협을 통해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협의 俠은 儒와 병행되는 개념으로 중국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등장하고 있다. 儒가 이론적이라면 俠은 실천적인 중국의 한 정신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俠은 민중도교와 마찬가지로 평민계층에 잠재되어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俠의 세계는 동한 이후 역사의 정식 기록에서 제거되기에 이른다(사마천의 사기에는 자객열전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그만큼 俠의 문화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와는 상반된 위험한 사상임을 알 수 있다. 俠은 검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반면 儒는 붓의 문화이다. 검의 문화는 한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통일된 안정된 제국에서 검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검이 사라지는 자리를 붓을 가진 관료들이 채워 나가면서 중국은 좀더 제도화된 왕조의 틀을 갖게된다. 이렇게 중국 역사의 초기에 사라진 俠의 문화가 중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재창조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俠의 문화가 대중문화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 일반 민중들은 협사들의 의리사상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유자들이 왕조의 갈림길에서 쉽게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다른 왕조로 출사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것이었다. 중국의 민중들은 죽음 앞에서도 떳떳했던 형가, 예양, 전제와 같은 인물들의 모습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였다. 이런 민중들의 바램은 무협소설이라는 특수한 장르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무협소설에 드러난 협객의 이미지는 서양의 기사나 일본의 무사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양의 기사가 상층지배계층의 귀족문화이고, 일본의 무사는 상층계급과 하층 계급 사이의 중간 계층의 특수한 문화인 반면 중국의 협객은 하층 대중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협객들은 궁궐이나 자신들의 집단안에 안주하지 않고 강호를 활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사계급은 의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고, 무사의 가치관념은 특정단체나 조직에 대한 강력한 책임감이었다. 반면 협객은 추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집단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 협객들은 우연적인 감정속에서 가치관념이 생성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협객이 하층 대중문화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기사들이 이런 가치관념을 신사도라는 단어 속에 일본의 무사들은 무사도라는 단어 속에 집약하였다. 반면 중국의 협객들은 俠義라는 단어 속에 자신들의 가치관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협의는 중국 민간사회의 도덕적 기반이라는 점 역시 의미심상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협의란 무엇일까? '허락의 말을 중히 여기고, 죽고 사는 것을 가벼이 여기며, 의기투합하지 않으면 검을 들고 일어섰고, 자신의 검이 빗나가면 할복함으로써 사죄하였으니, 이것이 협의 모습이다. 벗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않고, 나라에 분함을 터뜨리지 않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경시하고 나라의 권세를 중히 여기는 이것이 협의 기풍이다. 협은 유의 반대이다. 유는 죽음으로서 용서하지만 협은 분을 많이 내며, 유는 빈말을 숭상하믄 반면 협은 실제적인 것을 중시한다. 유는 길흉화복을 따지지만 협은 이해관계를 잊고, 유는 옛것을 답습하지만 협은 새롭고 기이한 것을 추구한다'라고 장유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 중국의 협객문화는 역사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중국 민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무협사는 정사의 보충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또한 그 자체로 하층계급에 대한 하나의 망탈리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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