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리에 채이고 가시에 찔리고 중국철학우화 1
엄북명 외 엮음 / 서광사 / 1993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언뜻보면 고사성어집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중국 철학서에 실려있는 우화들을 출전과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문과 함께 출전이 명시되어 있어 자료집으로 이용하여도 좋을듯 싶다.

중국의 철학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곤 대학시절 동양철학사에서 잠시 맛보았던 것이 전부인지라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이 철학적 우화를 보고 있자면 중국인들이 철학을 대하는 모습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예를 들어가며 핵심으로 접근해 가는 중국적 방법은 질문에 질문을 퍼부어대면서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게하는 소크라테스적인 방식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차이점이라 하겠다.

중국의 철학적 전통은 이런 우화와 비유의 세계속에서 발전하였다. 이 비유의 황금시대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언론의 자유가 활발했던 전국시대였다. 현재 중국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적 기원이 전국시대에 형성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상적으로 활기찬 시기였다. 당시 제자백가들이 쏟아낸 다양한 철학적 우화들과 비유들은 사상적 경향을 반영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또한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중국의 사상적 자원은 춘추전국시대를 끝으로 급속하게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후 이런 우화적인 작품이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춘추전국시대처럼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순수한 창작적 우화라기 보다는 불교의 유입에 따른 외국의 우화가 많이 소개된다. 이렇게 우화가 급속하게 소멸하게 되는 것은 시대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실 춘추전국시대가 끝나면서 중국은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왕조체제의 역사속으로 들어간다. 왕조 말엽의 교체기에 약간의 혼란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시기를 보내게 됨으로서 이런 우화적인 것보다는 文, 詩, 賦, 詞와 같은 정통 문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화의 특성이 촌철살인에 있었기 때문에 역대 왕조들 역시 이런 우화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화가 쇠퇴하게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유학을 꼽을 수 있다. 즉 심학으로 불리우는 유학을 국가의 중심학문으로 채택함으로써 학문은 경전을 암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학경전 이외의 책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음으로서 전국시대 이전까지 다양하게 싹트기 시작했던 중국의 학문적 풍요로움은 일시에 쇠퇴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국가적 사상성의 통일이라는 더 큰 목적을 달성하였기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손실은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풍요로운 전통이 지배계층에서는 단절되었지만 기층민중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학의 딱딱한 문장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비유가 우화속에 간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우화는 그 유명한 公孫龍의 <白馬非馬論>이다.  "말이란 말의 모양을 가리키는 것이고, 희다는 것은 말의 색깔을 가리키는 것이다. 색깔은 모양과 다르므로 흰말은 말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까봐 이런 예를 들었다. "말을 살 때 어떤 말을 사도 좋다. 그것이 누런 말이든 간에 검은 말이든 간에. 그러나 흰 말을 살 때는 경우가 달라진다. 흰 말을 사지 않은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예를 든 것이 더 어려운 이 학설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모른다. 보편과 개별의 문제를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白馬非馬論이 黑猫白猫論으로 대치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이 지배층과 기층민중간의 간극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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