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전설 현대지성신서 4
세이바인 베어링 구드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사 / 199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간이 잃어버린 황금시대를 묘사한 이야기라면 중세의 전설은 파라다이스를 향한 인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이 중세 전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 원조성때문이라 하겠다. 이 책은 1866년에 처음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후 중세 전설을 취급하는 책은 항상 이 책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중세 전설의 원조로서의 표준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책의 삽화로 들어있는 목판화가 모두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이란 사실도 책을 읽는 즐거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문을 축약한 편집본이라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이 책에는 모두 24편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진 이야기는 프레스터 존으로 알려진 이야기와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빌헬름 텔 정도이다. 나머지는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읽다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중세의 전설이 중세를 통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전해져온 이야기가 중세적 상황에 맞춰 변형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중세의 전설은 우리가 짐작하듯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기근, 전쟁, 전염병과 같은 중세인의 일상을 위협하였던 모든 요소가 다 등장한다는 점이다. 다만 이 위협적 요소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중세인들은 종교적 요소에 의지하고 있다. 이는 중세가 기독교세계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중세를 이해하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세 시대 전 기간을 걸쳐 자행되었던 유대인 박해에 관한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방황하는 유대인 이야기라든가, 소년십자군 이후 대량으로 실종된 어린이들을 연상하게하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스위스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 빌헬름 텔의 이야기의 원형이 노르웨이의 역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등과 같이 중세의 전설을 취급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있는 전설의 테두리를 살펴보게함으로서 전설이 원래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도한 바가 어떻게 변형되어 다른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취급되는 이야기는 중세시대만을 한정하고 있지 않다. 유럽이 아시아로 세력을 넓혀가면서 얻은 지리상의 지식과 인문학적 지식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전설-꼬리달린 사람들과 행운의 섬-등도 취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중세의 전설이면서도 고대의 전설이 중세에 도착하여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세의 전설이 근대로 흘러 나가면서 변형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설이 어떤 인종 혹은 민족의 속성을 보존하는 거대한 무의식 역사의 샘이란 확신을 갖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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