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1 지혜가 드는 창 6
진중권 지음 / 새길아카데미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美學이라는 단어에 혹해서 구입했던 책이 이론과 실천의 <미학사>와 논장의 <미학의 기초>라는 책이었다. 두 책의 첫장을 읽어 보았을 때 미학은 철학이라는 사실에 약간 당혹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미학사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두 책 모두 사회주의권에서 발행된 책이기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철학의 세계와는 약간 생소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미학은 어려운 것이란 선입견 속에서 깊이 들어가기를 주저주저하였다. 그런데 <미학 오디세이>를 만났을 때 미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예술에서만 미적 관계가 총체적이고 완전하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실재 현실 자체에서도, 즉 자연과 사회와도 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의 미적 체험은 예술 작품을 음미할 때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생활의 지극히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대상, 현상, 사건에 접할 때도 일어나는 것이다. 미학의 임무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이러한 미적 관계의 합법칙성을 연구하는 것이다. - 미학의 기초, 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발췌-

뒤러의 하늘, 피타고라스의 하늘, 그리고 우리의 하늘로 시작되는 이 책의 서문은 위에서 어렵게 표현한 미학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즉 미학을 말 그대로 미술과 음악을 통해서 전달해 주고 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말하듯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란 말에 동감한다. 그 알아가는 과정을 이 책은 알기 쉽게 서술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에셔의 세계를 보았고, 마그리트의 세계를 경험했다.

가끔 이 책과  <미학사>와 <미학의 기초>를 비교해 보곤 한다. 예술 혹은 지식은 아는 것만큼 이해하고 보인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한다. 이 책들의 행간 속에 숨어있는 뜻을 오디세이의 항해길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그 항해의 지도로 위의 책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미학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해 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도자완井戶茶碗이 생각났다. 16세기경 경상도 진주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막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가 되었다. 그 이유는 사발이 바탕이 노랗고 굽부분에 유방울-가이라기-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래 유약(釉藥)이 불의 온도 부족으로 불규칙하게 녹아 응결되어 나타난 독특한 형태가 마치 철갑상어 가죽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가이라기'라는 말은 무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말이다.즉 칼의 손잡이와 칼집의 장식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철갑상어 가죽이었다. 또한 이도다완을 두손으로 움켜쥐었을 때나 굽 부분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쓸어볼 때의 감촉이 매화피 혹은 철갑상어 가죽을 연상시켜 무사들에게 오묘한 깨달음으로 다가온 것이다. 검(劍)을 통한 정신과 자연의 일체감을 느끼듯 검이 아닌 이도다완을 통하여 또다른 정신세계가 열림을 터득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황색의 꾸밈없는 모습과 우연의 소산으로 굽부분이 실패한 자기를 자신들의 눈으로 다시 보았던 것이다. 즉 보는 시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미의 모습이 결정된 것이라 하겠다.  굽에 기포가 생기면 자기를 만드는 도공은 상품의 가치가 없어 깨버린다. 하지만 그 우연이 미적 심성을 상승시켜 특이한 자기로 승화되었다는 사실은 미학의 입장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 하겠다. 여기서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무엇을 아느냐로 이해되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것이 미학의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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