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전의 남자
콘라드 슈핀들러 / 청림출판 / 1995년 8월
평점 :
품절


5천년전의 남자는 매우 흥미있는 책이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의 알프스 산맥에서 등산 중이던 부부가 한구의 사체를 발견하였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조난자의 사체일 것으로 추정하고 산장으로 내려와 주인에게 보고하였고, 주인은 통상적으로 이를 경찰서에 신고하였다. 하지만 발견 장소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접경의 경계 모호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산장주인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경찰서 양쪽에 모두 연락하였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해서 이 조난자의 사체는 오스트리아가 소유하게 되었다. 알프스 지역에서는 해빙이 되는 봄철이면 오래전에 조난되어 빙하속에 갇혀있던 사체들이 표면에 드러나는 일이 많아 이런 발견은 그리 큰 화제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체 역시 오스트리아로 넘겨지고 경찰은 통상적인 조사를 위해 이 사체를 법의학 연구소에 넘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법의학 연구소에서 이 사체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사체는 20-30년전이 아니라 5천년까지 시간대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 이 사체가 발견된 지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인 결과 활, 화살, 도끼,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불씨그릇, 밧줄, 등짐용 바구니, 단검과 칼집과 같은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수거되었다. 이들 유물에 대한 대대적인 검사가 실시되면서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진보된 삶을 살고 있었던 당시의 상황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는 문명과  문화라는 것이 현재의 잣대로 이해될 때 얼마나 곡해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서두에 나오는 표범의 이야기처럼 왜 그 남자가 산꼭대기로 올라갔느냐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사냥꾼에서부터 부락에서 추방된 자까지 다양하게 추정하였다.  반면 법의학자들은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죽었느냐에 따라 그의 죽기 직전의 상황을 재현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법의학자들은 사망당시 그의 자세를 분석한 결과 무엇인가의 충격에 의해 쓰러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그는 사고사 아니면 다른 무엇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였다.(이 당시 불분명하던 사인은 2004년 그의 가슴부근에서 돌화살촉이 최종 확인됨으로서 밝혀졌다)  이 책은 고고학적인 책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법의학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점이 이 책의 흥미를 더욱더 배가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하나의 증거를 가지고 그 증거의 증거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은 마치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추리적인 면과 너무 흡사하였다. 그리고 드러난 사실에 대한  해석 역시 고도의 추리력과 역사적인 지식, 그리고 상상력이 가미되지 않으면 도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반부의 혼란스런 수습작업이 고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최소한으로 한정되는 장면을 읽으면서 조유전선생이 기록한  무령왕능 발굴의 혼잡함이 떠올랐다. 새삼 고고학이나 역사의 연구는 낭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오랜 기간 동안 치밀함과 끈기를 가지고 바닥까지 파고들어가 다시 그 바닥서부터 위로 올라오는 과정은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고고학계의 현실은 어떠한지도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었다. 역사적 현장인 궁궐 안에 아파트 건축을 허가하는 행정당국이나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발견된 거대한 돌덩어리-형태상으로 볼 때는 고인돌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무자비하게 깨뜨려 도로의 기반석으로 사용하는 무자비함과 대비되면서 역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 사체는 일반인들은 아이스 맨이라고 불렀지만 고고학자들은 외짤 계곡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외찌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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