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문명 - 석기시대의 비밀
리처드 러글리 지음 / 마루(금호문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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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보면 우리 인간의 역사를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철의 시대로 나누고 있다. 황금의 시대는 정말로 인간이 행복했던 시대이다. 철의 시대란 전쟁과 살육으로 인간이 고통을 받고 있는 시대이다.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읽고 한가지 의문이 있었다. 왜 옛날이 좋은 시대이고 지금이 나쁜 시대인가. 학교에서는 지금이 옛날보다 더 살기 좋은 시대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는가? 이런 의문은 신화나 전설에는 어김 없이 등장하였다. 옛 시절은 전쟁도 없고 인간이 행복했던 시절이었고 현재는 고통의 시대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에덴 동산이 사라지고 가시덩쿨이 자라는 땅을 일구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 앞으로의 미래는 더 살기 편한 세상으로 변한다는 과학자들의 예언과는 반대로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황금시절과 철의 시절이란 단어가 단순히 상징적인 단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단어 속에는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역사의 개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선사시대는 대략 95%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 기록된 역사는 겨우 5%도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5%의 기록을 신봉하며 나머지 95%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인 리차드 러글리는 <선사시대가 역사시대의 序文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시대가 선사시대의 後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은 황금시대로부터 철의 시대로 전락한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100% 합당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역사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다시 기차로 갈아탄 다음 최종적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 진보일까. 혹은 한명 혹은 10명 미만의 사람이 죽어가던 전쟁이 수천명 혹은 수백만명이 죽어가게끔 발전한 전쟁의 기술이 진보일까. 아니면 무통분만의 기술, 혹은 드릴로 두개골을 정교하게 뚫고 뇌수술을 하는 것이 진보일까. 아니면 DNA를 조작해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보일까.

역사의 진보가 물질적인 발전의 형태로 단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물질적인 진보는 퇴화의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아도 우리는 약간의 혼란이 생겨날 수 있다. 현대의 우리는 중세시대의 농노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자유도 석기시대를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의 자유에 비하면 초라하게 보일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시작점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힘은 석기시대의 튼튼한 기초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진보는 결코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확대에 의해 진보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질적 팽창은 현재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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