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열전
김영수.김경원 지음 / 선녀와나무꾼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한비자에 보면 신하가 저지르는 여덟가지 간사한 행동八姦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동상同床, 재방在旁, 부형父兄, 양앙養殃, 민맹民萌, 유행流行, 위강威强, 사방四方이 있는데 이것이 신하가 임금에게 행하는 대표적인 간사한 행동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동상은 임금이 총애하는 여자를 이용하는 것이고, 재방은 군주를 곁에서 모시는 자들을 이용하여 임금의 환심을 사는 법이다. 부형은 군주의 적자나 사랑하는 자식을 이용하는 법이고, 양앙은 군주의 취미를 이용하는 법이다. 그리고 민맹은 군주가 해야할 상벌을 신하가 대신하는 것이고, 유행은 군주가 궁궐밖 세계와 접촉할 기회가 적은 것을 이용해 군주의 환심을 사는 법이다. 위강이란 군주의 신임을 빌미로 자신이 호가호위하는 것을 말하고, 사방이란 군주에게 자신들보다 큰 나라의 위험을 강조하여 군주를 자신에게 의지하게 하는 법이다.

간신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군주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결국은 망국의 지경으로 나라를 몰고간다. 그럼에도 왜 군주들은 간신들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간신이 군주의 입맛에 맛는 것만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왜 알 수 없는가?  그것은 군주와 세속세계와의 단절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간신은 그 필연적인 간극을 자신의 간사함으로 채우는 것이다. 간신이 좋아하는 토양은 병균이 발아하는 조건과 유사하다. 간신은 이런 토양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양분삼아  자라기 시작한다.

간신은 전체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전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개인 영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자신과 비슷한 무리들로 채워져 있다. 이 무리들을 묶어놓는 것은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단결이 아니라 잇속으로 얽혀진 결탁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잇속이 사라지면 그 묶임도 해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흥망이라도 상관없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집단이나 개인이 섬기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멀리 이완용이나 송병준을 바라볼 필요도 없다. 현대사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국민들을 고통속으로 몰아넣었는가? 그들은 당대에는 이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강변하였지만 그 결과는 고통이었던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고통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바로 이 무책임 역시 간신들의 한 특징인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윗분의 말을 그대로 실행했을 뿐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는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정체속에서 살고있다. 하지만 5년을 주기로 우리는 감옥의 행진을 감상한다. 전 정권의 실세들이 새로운 정권의 한탕 쇼에 걸려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는 것이 정례화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정치의 상황은 간신들이 아주 좋아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혹한 형리가 동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아쉬워하는 것처럼 법이 정치하는 자신들을 너무 얽맨다고 불평만 뱉어낼 뿐이다. 한 예로 정치자금법도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을 지지했던 인간들로부터 고쳐야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고통을 나누며 국민의 편에서 일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은근슬쩍 보여주는 작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관용이 간신배들이 자라나는 토양이 된다는 점은 명확하다.

간신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회는 개방된 사회이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드러난 투명한 사회는 음습한 곳에 비추는 햇볕과 같은 것이다. 이솝우화에서 보듯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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