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기행 - 서기 천년의 일상과 삶
로버트 레이시, 대니 단지거 지음 | 강주헌 옮김 / 청어람미디어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영국의 지형은 남쪽의 해안지대는 낮고 북으로 올라갈 수록 높아지는 지형이다. 그리고 영국 주변으로 멕시코 난류가 흘러들기 때문에 겨울에도 잉글랜드 남부, 웨일즈, 아일랜드는 연평균기온이 10도정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조건은 침입자들에게 브리튼이란 섬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브리튼 섬의 원주민은 켈트족이었지만 이들은 곧 앵글족과 색슨족에게 밀려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쫓겨났다. 앵글족과 색슨족은 이후 잉글랜드 지역의 지배자가 되었고, 실질적인 영국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이들은 1066년 노르망디의 공작인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하면서 앵글로-색슨족의 왕국은 앵글로-노르만 왕조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국은 극심한 변화를 격게된다. 이 책은 바로 윌리암의 침략이 있기 전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40년대까지만 해도 브리튼의 진정한 역사의 시작은 윌리엄의 정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관례였다. 이 정복으로 대륙의 봉건제가 이식되어 잉글랜드 주도의 브리튼 통합작업이 진행되면서 봉건화가 진행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40년대부터 서서히 영국에도 침략 이전에 대륙과 유사한 봉건제도가 존속하며 독자적인 봉건제도가 발전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역사적 증거가 드러나 지금은 영국의 봉건제도는 대륙의 영향이 아니라 자체내에서 발전한 제도에 대륙의 제도가 들어와 혼합되면서 독특하게 발전하였다고 본다.

여기서는 바로 앵글로-노르만시대가 아니라 이전인 앵글로-색슨 시대의 잉글랜드를 조명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도 이 점에 맞추어 책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상황임에도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앵글로-색슨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유민이었던 앵글로-색슨의 원주민은 하루 아침에 지배자에서 피지배자의 신분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빈 훗의 이야기는 윌리엄 정복왕의 시대로부터 100년이 조금 넘은 시점의 이야기이다. 이때 벌써 원주민인 앵글로-색슨족은 통치자인 노르만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노르만의 잉글랜드 정복은 진보란 면에서보면 후퇴의 사건일수도 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침입 이전의 앵글로-색슨족의 사회는 매우 공평하고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정복자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아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원동력은 앵글로-색슨시대의 전통을 들수가 있다. 앵글로-색슨족은 구성원이 법적으로 자유민이었다. 자유민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며 전시에는 병사로 변하는 병농일치제의 사회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윌리엄과 헤이스팅스에서 해롤드의 지휘를 받아 싸운 군대가 바로 이런 형태로 모집된 군대였다.

여기에는 1000년 경의 잉글랜드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것은 영국인들이 영국적이라고 부르는 것 이전의 시대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전통이 영국적인 것의 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정복왕의 자손들은 언제나 프랑스어를 궁정용어로 구사하고 있었고, 섬보다는 대륙에서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왕들이 잉글랜드의 토속어인 영어를 구사한 것은 헨리 4세때 부터이다. 왕실이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상용어가 바뀌는 과정이 바로 정복자들이 앵글로-색슨의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인 것이다. 바로 이후부터 영국적인 것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원천을 바라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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