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허영의 역사
마리아 아쑨타 체파리 리돌피 외 / 혜안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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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경의 유럽 각 지역별 인구는 잉글랜드가 5백만명, 프랑스가 1천5백만명, 독일이 1천2백만명, 이탈리아가 1천만명 정도였다. 이 당시 시에나는 대도시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에 있던 대도시는 파두아, 나폴리,크레모나, 브레시아, 볼로냐, 베로나, 베르가모, 루카 뿐이었다. 이들 도시는 5만에서 12만의 인구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시에나 막 도시로 성장하려는 문턱에 있는 상태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들이 점점 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도시는 신선한 자유의 공기를 미끼로 농촌지역의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있었다.  도시인구의 증가는 도시국가의 재정상태에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늘어나는 인구와 미약한 기반시설로 인해 도시는 거대한 오물이 넘치는 장소로 변해가고 있었다.  도시국가의 통치자들은 도시의 정비와 확대를 위해 돈이 필요하게 되었고, 세수의 확대를 위해 인두세, 주택세, 시장세 등과 같은 기존의 세금항목에 허영과 사치에 관한 법률을 추가하여 세수확대에 주력하였다. 이 법률은 윤리적인 차원을 규정하는 도덕적 벌률이었음에도  사실은 경제적인 것이 주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법령의 규정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벌금부과에 따른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려는 세심함이기도 했다. 이런 통치자들의 세심함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당시의 풍속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는 것은 희극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시의 주민들은 지배자의 벌금  규정을 어떻게 피해갔을까? 고금을 통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관리들을 매수하는 방법이었다. 옛부터 황금으로 두드리면 안열리는 문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치도시정부는 관리들을 도시민들이 매수하는 것을 막기위해 고발자에게 벌금 액수의 반을 주는 법률을 통과시키기도 했지만 시에나의 경우 법률이 끝없이 추가되고 개정되는 것을 보면 사치를 박멸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왜냐하면 벌금의 반을 받는 것보다 뇌물을 주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책은 중세 이탈리아를 법률을 통해 바라보는 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국사 시간에 고대 고조선에 8조의 법조항이 존재했고 그 가운데 3조목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이 3조항을 가지고 당시 사회의 한 단면을 유추해 본다.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이라는 조항에서는 법의 준엄함과 통치체제의 완벽함을, 물건을 훔친자는 곡물로 배상한다는 조항에서는 사유재산제도를, 사람을 상해한자는 노예로 삼는다는 조항에서는 신분이 구분되는 사회라는 것을 알 수있다고 배웠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법률적 규정의 조항을 통해서 유추해 보는 이탈리아 사회사인 것이다.  이 결과 우리는 한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률의 금지조향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무슨 옷을 입었으며, 신발은 어떤 것을 신었는지 알게되며, 집의 구조 역시 알게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알게되는 사회의 모습은 살과 피가 제거된 뼈대의 모습일지라도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모습을 보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사실 이 문헌이 바라보고 있는 시대는 도시국가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얼마 뒤에 시작되는 대항해 시대에 의해 대서양시대가 개막되면서 지중해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는 두번 다시 이러한 영광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 책은 그 마지막 화려함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뒤쪽에 붙어있는 돈나이오 법령집과 세금품목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금 품목서는 도시의 법령이 시에나 시민의 의식주를 완벽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탈리아 중세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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