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제국기 범우고전선 57
신숙주 지음 / 범우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麗末鮮初 일본과 우리와의 관계는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야기된 양국관계의 악화는  결국 힘을 바탕으로 한 조선의 진무책으로 진정될 수 있었다. 이후 조선은 일본에 대해 交隣이라는 커다란 외교적 틀 속에서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이 책은 이웃 일본으로 선초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9개월간 머물다 온 신숙주가 일본에 대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외교보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지도와 일본와 유구(현재의 오키나와)에 대해 적어 놓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천왕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들이 아무런 실권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무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막부의 실권자가 일본의 실질적 지도자(여기서는 국왕으로 호칭)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구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왕국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선 초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말기 운요호雲揚號사건에서 보여준 조선의 일본에 대한 정보미숙과 큰 대조를 보인다.


한 예로 명성황후를 시해할 임무를 띠고 조선에 부임한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는 제물포에서 한양으로 오는 가마 안에서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가 숫자를 센 것은 제물포와 한양간의 거리를 셈하고 제물포에 있는 일본군이 위급상황시 얼마나 빨리 올 수 있는가를 계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미우라의 이러한 모습에서 정보란 하찮은 것 하나도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란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아쉽게도 이후 일본에 대한 이런 외교적 보고서는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 조선에서는 실제적인 보고서보다 이 해동제국기를 가끔 증보하는 것으로 일본에 대한 이해를 마무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급격하게 변해가는 일본의 모습을 조선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는 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정보는 국력이라는 현재의 구호는 5백년전에도 유효한 구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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