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쾌락
장 베르동 지음, 이병욱 옮김 / 이학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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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성직자들에게 구약성서의 <雅歌書>는 골치거리였다. 내용으로 볼 때 너무 선정적이 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서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이 경전을 없앨 수도 없었다. 이러한 고민은 초세기 교회의 교부들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초세기 교부들은 중세의 성직자들 만큼 당혹스러워하지는 않았다. 선정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세기 교부들은 아가서의 주석에 시간을 할애하여 육정적 사랑의 이야기를 신과 인간 사이의 아가페적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중세 전반동안 교회는 교부들의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남녀간의 성문제를 성서적으로 해석하고 규정하엿다.  이제 사랑은 육제적인 부분을 유예하고 정신적인 부분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거룩한 聖事로 규정하므로서 이로인해 발생하는 부부간의 성행위는 사랑의 최종확인이 아니라 자손을 낳은 행위로 축소시켰버렸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부부간에도 아이를 낳기 위해 벌이는 성행위만이 정당하다는 뜻이었다.  이 창조행위의 수행 이외의 목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은 쾌락을 탐하는 죄악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교회의 성의 쾌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회의 생각을 조롱하며 여전히 성의 쾌락에 탐닉하였다.  

교회의 이러한 간섭은 사람들이 다른 것으로부터 쾌락을 찾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중세인들은 어떤 작은 계기만 있다면 이를 핑계로 삶을 즐겼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보제>로 알려진 축제였다. 이 축제를 통해 중세인들은 외형적으로 억압된 성의 분출구를 폭음과 폭식으로 풀었으며 여기에 성적인 방종함도 끼어 넣음으로서 교회의 가르침을 공개적으로 비웃기도 하였다.  일반인들이 교회가 인정한 합법적인 축제의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억압된 욕구를 분출한 반면 지식인들은 좀더 은밀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즉 교회가 금지한 영역으로 슬쩍 발을 들여놓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들이 택한 방법은 정신적인 쾌락을 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금지된 서적을 읽거나 집 안을 필요 이상 화려하게 장식하고 사냥에 탐닉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냥은 기사들이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란 조건을 달아 교회가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그럼에도 중세는 본질적으로 신의 세계였다. 중세인들은 자신이 이승에서 저지른 죄악에 대해 저승에서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값을 치룬다고 보았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이승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값을 이승에서 치루고 저승으로 가기를 원하였다. 이를 위해 고백성사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죄의 고백에 따른 죄에 합당한 댓가를 치루는 보속을 수행하는 것은 자신의 정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중세인들은 이를 위해 스페인의 콩포스텔레나 이탈리아의 로마, 잉글랜드의 캔터베리로 순례의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의 목적은 이승의 죄로 더럽혀진 영혼의 세탁이었다. 정말로 중세인들은 생 쟈크의 길을 따라 순례여행을 떠나면서  육체적인 쾌락의 죄악이 정신적인 차원의 쾌락으로 대치되는 것을 느끼기는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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