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친일파재판사
마스이 아스이치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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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아시아 각국은 일시에 하나의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 점령기간 동안 그들에게 협력했던 자신들의 동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가였다. 서구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던 동남아시아에서는 친일파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과 협력하여 서구제국과 투쟁한 사람들이 후일 정권을 잡음으로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즉 동남아시아에서 친일문제는 식민지 독립문제와 얽혀 평가를 유보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점령기간이 길었던 한국과 오랜 기간 전쟁을 치뤄왔던 중국에서는 친일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본의 지배가 가장 길었던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친일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이한 길을 가게 되었다. 북은 친일파를 말 그대로 완전히 숙청하면서 이를 체제를 확고히 하는데 이용하였다. 공산주의를 표방한 북에서는 친일로 자본을 축적한 이들을 체제적으로나 심정적으로 결코 포용할 수 없었다. 이 결과 북에서 숙청된 친일파들과 자본주의자들이 남으로 내려와 북의 공산주의를 가장 반대하는 집단으로 변모하면서 이후 한국 정치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실제로 남쪽의 친일파들은 북에서 내려운 이들과 연대하여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공주의자로 변신함으로서 한국전쟁 이후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이런 왜곡된 현대사로 인해 한국에서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민족주의자처럼 보이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모순은 현재까지 극복되지 못하고 대립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 영웅본색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범죄집단의 범법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덜 범죄적인 자를 응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시 친일파 문제는 계륵과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은 공산당과 국민당의 대립이 일제의 패망으로 소강상태에서 점차 갈등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시기였다. 즉 국민당과 공산당은 산적한 문제기 있음에도 친일파처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한 것은 대륙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민심을 차지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중국에서는 친일파-한간이라고 부른다-를 민족 정기를 회복할 차원에서 처단할 수 있었다. 중국의 친일파 대부분은  일본이 남경을 점령했을 때 세운 꼭두각시 정부인 남경정부에 협력했거나 만주제국에 협력했던 사람들이었다.  즉 이들은 국민당이나 공산당 양쪽에서 매력을 느낄 이유가 없는 부류들이었다. 어찌보면 중국의 친일파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입장에서보면 배반자였던 것이다. 이 결과 중국의 한간 재판은 1946년 4월부터 1948년 9월까지 진행되었다.

이 책은 한간 재판에 대한 연대기적인 기록이 아니라 개개인의 재판에 관한 기록이다. 그 기록도 한간 개개인에 대한 신상정보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뒤에 붙어있는 인명부록표를 보면서 읽어가면 좋을듯싶다. 이 책은 한간의 재판기록과 신문기록을 발췌하거나 기록한 것이기에 한간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기록에 나타난 한간들의 변명을 읽다보면 이들  각각 역시  나름대로의 조국관과 정치관 그리고 철학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재판정에서 당당하게 그 시대의 상황에서 민족에게 봉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의 처신이 국가를 위한 최선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애국.애족이란 용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개개인이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가에 대한 사랑은 조건이 없는 영원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간과 친일의 공통점은 자신의 영리를 애국과 애족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홍등가를 찾아가면서 이로인해 대다수의 여성이 보호되고 있다고 항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범죄의 집단에서 허우적 거리는 조폭일 뿐이다. 한간과 친일파 역시 어떠한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있어도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역사의 기록은 서릿발처럼 날카롭고 냉정해야함을 느꼈다. 역사의 기록은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무미건조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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