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세계
월 뱅크 지음, 김경현 옮김 / 아카넷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서구의 역사를 읽은 사람들은 간혹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위대한 아시아는 있었는가?> 이 말의 반대편에는 위대한 서양이라는 허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명은 서양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 문명은 서진하여 유럽을 교화시켰다. 이렇게 시작된 서양의 문화적 열등감은 그리스가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함으로서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폭력의 시작이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인 것이다. 플르타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을 페르시아가 그리스의 제 도시를 침범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는 주장을 통해 역사적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은 문명의 파괴를 위한 동진이었을 뿐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들자면 끝없는 반달리즘의 리스트가 작성된다. 페르세폴리스 궁전 방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소각....

이 알렉산드로스-인도 북부지역에서는 이스칸더-의 동진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시각을 빌리자면 서양이 문명이란 허구의 탈을 쓰고 자행한 침략이었다. 그 침략을 미화한 헬레니즘,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트로이 전쟁을 유발시킨 헬렌, 그리스의 다른 이름 헬라. 결국 헬레니즘이란 남의 것을 빼앗고 다양한 문명을 그리스화를 통해 단일화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얼마나 서양적인 발상인가? 자신들이 타 제국보다 문명적,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전제하에서 만들어낸  단어. 이 단어에 중독된 아시아의 역사 인식은 자기 비하이며, 열등감일 뿐이다.

이는 헬레니즘의 역사적 위치를 부정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서양의 이러한 시각이 싫을 뿐이다. 서양은 헤로도투스 이래로 지금까지 제국과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과정을 밟아왔다. 얼마나 좋은 발상인가? 제국은 공동체이고, 개인은 제국의 일부인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발상은 코스모폴리탄이란 기상천외한 단어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지금도 국가와 개인의 이러한 관계를 미국이란 나라를 통해 볼 수 있다. 미국인 한 사람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일부분이고, 미국이란 단어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또 다른 분신인 것이다. 이러한 기형적 왜곡으로 인해 제3세계의 국가들은 미국이란 단어 앞에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헬레니즘이 동방에 낀친 영향력이 새삼 크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반대의 사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서양의 어느 누구도 반대의 가정은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리스적인 요소가 동방의 제 요소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새로움을 창조하는 과정의 경이로움이다. 그리스가 유서깊은 동방의 문명을 흡수하면서 세계로 그리고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성장하여 온 세상을 감싸는 과정은 문명이나 역사의 과정에서도 철저한 무력적 원리가 지배함을 느끼게 한다. 이 무력적 원리의 종착점은 무엇일까, 바로 전쟁이었던 것이다. 헬레니즘의 시작은 처음부터 무력이란 수단이 동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역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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