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 이상의 도서관 4
아베 긴야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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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코니 월리스의 '둠스데이 북'이나 마이클 클라이튼의 '시간여행'을 읽다보면 유럽의 중세는 무척이나 생경하고 위험스런 세계처럼 보인다. 이런 시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중세는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무수한 점과 점이 아주 여리고 위태로운 선에 의해 연결된 고립된 세계였다. 이 선은 언제 끊어질지 몰랐지만 장원경제로 자급자족하던 중세인들은 이를 크게 괴념치 않았다. 그러기에 중세의 인간들은 점을 벗어나 선으로 이어진 빈 공간으로 들어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이런 점을 신에게 감사했고, 종교적 운명론 속에 자신의 삶을 대입시킴으로서 어느 정도 위안을 삼았다. 그럼에도 중세의 점과 점 사이의 빈 공간은 말 그대로 무인지대였고, 도적의 세계였으며, 위험한 장소였다.

이런 평면적인 중세관은 우리들에게 중세는 암흑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중세의 암흑은 이웃 세계인 아랍과 비교할 때 상대적인 것이었다. 이 문화적 상대성은 유럽이 아랍을 철저하게 무시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열등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러하였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열등감은 아랍의 세계를 배우고 모방하고자하는 욕망으로 어떻게든 상쇄될 수 있었다.

유럽의 중세를 구성하는 요소는 종교와 신분적 질서였다. 종교를 통해 단일성을 신분적 질서를 통해 조화를 꾀하였다. 이런 두 가지 요소는 중세의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중세의 문신은 다양한 유럽 문화 속에서도 결코 위력이 감소된 적이 없었다. 종교적 감성이 약해졌을 때 루터로 인해 촉발된 종교분열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 진영의 종교심을 더욱 깊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프랑스 혁명으로 붕괴된 유럽의 신분제는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신분제로 명맥을 유지하며 정치적으로 이를 대신할 제도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유럽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연장된 중세'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런 유럽의 중세를 정착과 편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정착하는 중세인과 편력하는 중세인의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저자는 중세 유럽의 발전적 과정을 정착에서 편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정된 중세의 신분적 질서와 종교적 성향이 편력이라는 과정을 통해 동요하고 다양성으로 변모해 간다고 보고 있다. 이는 유럽의 팽창성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이론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만큼 저자의 중세 문헌의 다양한 섭렵에 기인한다. 저자의 '중세산책'처럼 이 책도 가볍게 접근할 수 있지만 그 여운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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