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토의 중세 상인 -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다티니가 남긴 위대한 유산
마르케사 이리스 이리고 지음, 남종국 옮김 / 앨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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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그리스도교 세계가 1517년 루터의 항명으로부터 촉발된 종교개혁을 지나면서 근대로 접어들게 되지만 이미 이전부터 그런 싹이 보이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선 집단이 새로 부상하는 계급, 이른바 부르조아지라고 부는 상인 계급이었다. 이들은 종교개혁 이전부터 무역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한 사람들이었다. 

사실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개막하는 항해의 시작은 우연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이었다. 그 전까지 유럽은 우리의 바다Mare Nostra라고 부르는 지중해 중심의 세계였다. 하지만 아랍이 지중해를 장악하고 비단길마저 지배하면서 유럽은 동방과의 무역이 단절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유럽은 대서양으로 배를 띠워 동방으로 가는 뱃길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 결과로 그 당시 항해술의 근간이 연안항법을 해야 했기에 아프리카의 서부가 유럽인들에게 철저히 탐색되었다. 그리고 희망봉을 돌면서 이제는 아프리카의 동부가 알려지면서 유럽은 본격적으로 동방을 향해 가는 길에 있는 아프리카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게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종교의 세계에서 무역의 세계로 변해가는 시기에 상인들은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인 유럽에서 장사는 권장되었지만 과도한 이익을 탐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자놀음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유럽의 상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을 믿으며 신의 섭리에 따라 장사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동방으로의 뱃길이 열리고 유대인, 아랍인, 동양인들과의 경쟁을 통해 상업세계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당시 이들에게 그리스도교 세계가 요구한 것은 종교적 정직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윤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될 수 있었다. 돈을 멀리하면 파산이고 돈을 가까이하면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은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이윤추구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런 약점을 기발한 방식으로 상쇄하였다. 그것은 바로 현재까지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회계장부였다. 

유럽의 상인들은 빈 공책의 한 면을 정확하게 반으로 구분한 다음 종교적인 자세로 장부에 선과 악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즉 수입은 선善, 지출은 악惡의 개념과 비슷하게 정리하였다. 이는 신심깊은 신자들이 자신의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을 매일 매일 기록하여 어느쪽이 더 많은지를 가름하여 그날의 삶을 평가하고 그 평가가 모여 한달을 그 한달이 모여 일년을 평가하는 식으로 기록되었다. 

상인들에게 선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악이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혹은 쓸데없는 곳에 지출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들은 매일 매일 회계 장부에 자신의 상업실적을 기록하여 하루를 마감하며 자신의 오늘 행위가 주님의 뜻에 합당했는지 검토하였다. 그것이 자신이 뜻하는 방향이 아니었다면 더 열심히 더 절약하여 최대한 주님의 뜻에 맞는 결과를 산출하려 하였다. 이 결과 일년의 마지막 날에 자신의 장부에 선의 결과가 악의 결과보다 더 많으면 자랑스럽게 검은 글자로 그 결과를 기록했고, 손해를 보았으면 붉은 글씨로 자신에 대해 경고를 하였다. 

중세의 상인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자신과 신과 이익과 손해 사이에서 고심하고 분투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세는 근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이런 종교적 심성은 이후에 회계장부의 글자로만 남게되고 이들은 더욱더 착취적인 집단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씁쓸한 기억이라 하겠다. 

이들은 중세적 시대에 그 시대에 맞춰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려 노력하였고, 그 이윤의 노력을 악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 이루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의 부를 합리화하였다. 이 합리화는 유럽이 가정 먼저 자본주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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