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일곱 기둥 1
T.E. 로렌스 지음, 최인자 옮김 / 뿔(웅진)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사막은 육지의 바다이다. 이 거대한 경계 안에서 인간은 왜소하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심오한 삶의 지혜와 진리가 숨어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은 사막에서 고독을 잉태했고, 지혜를 출산했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역시 그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사막은 정적인 고독과 지혜의 장소가 아니라 동적인 장소로 이해되었다. 그는 사막의 고독 속에서 아라비아의 독립을 구상했고, 사막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는 사막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자신들에게는 무한히 열려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전체 3권으로 번역된 이 책의 1권은 바로 로렌스의 이런 구상이 싹트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브리튼이라는 식민제국의 전체적인 구상과 자신의 생각이 상치되더라도 이에 구애받지 않고 아랍을 설득해가면서 하나의 아랍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우리가 아랍이라고 알고 있는 거대한 제국은 이집트인, 다마스커스인, 시리아인, 바그다드 사람, 알제리인 등과 같이 다양한 지역을 아우르는 허술한 제국이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아랍언어를 사용하는 이 광대한 땅에서 부족이 아니라 하나의 아랍이라는 추상적 관념이 독립의 횃불로 타오를 수 있도록 이방인인 로렌스는 자신의 열정을 불사른다.

사실 로렌스는 이집트의 브리튼 식민당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맥마흔 선언'이라든가 '사이크스-피코 협정'과 같은 정치적 뒷거래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시종일관 아랍의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자신의 태도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는 아랍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결코 독자적인 왕국 혹은 국가를 창설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아랍이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존재가 아랍 영토 안에서 서서히 드러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당시 세계인이라고 자부하였던 브리튼 식민제국의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로렌스의 이런 태도를 비난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아랍을 하나의 대의로 묶고 그것을 현대사로까지 이어지게 만든 주역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권의 압권은 오랜 사막 여행을 통해 몸이 쇠약해진 로렌스가 파이잘의 진영에서 몸을 추스리며 아랍의 독립전쟁을 구성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전략가와 전술가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론을 사막이라는 거대한 땅에 접목시켜 보며 로렌스 자신의 구상을 다듬어가는 장면은 사막이라는 장대한 배경과 어울어져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다가온다. 로렌스는 여기서 정규적인 군대방식을 포기하고 철저히 게릴라 전술 위주의 전쟁을 선택하기로 한다. 이것은 시나이에서 터어키군과 대치하고 있던 브리튼과 프랑스 연합군의 방침-이들은 아랍이 터어키군과 전통적인 전쟁을 벌이길르 원하였다-과는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로렌스는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운송수단인 철도의 파괴와 통신수단인 전선의 절단을 감행한다. 터어키군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아라비아 지역에 엄청난 수의 군대를 주둔시켜야만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연합군이 팔레스티나에서 벌이는 작전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로렌스의 이런 결정은 이후 벌어지는 전쟁의 과정에서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밝혀진다.

** 이 책은 영화로 치면 로드무비와 비슷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과 아라비아의 지도 한장 제대로 심어놓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 약간 의아할 뿐이다.  이런 사소함으로 인해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된다면 그것은 순전히 출판사의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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