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리나 강의 다리>를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14년 언저리였을 것이다. 청목 출판사에서 나온 독문학자 강두식의 번역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3분의 1 쯤 참고 견디며 읽다가 집어던졌다. 원문 번역이 아니라 독일어 중역인 것까지는 견딜 수 있었지만, 지명과 이름이 틀렸고, 문장도 엉망이라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독일어나 영어 좀 하는 초보자들이 나눠 번역한 것이 틀림없었다. (소위 세계문학전집을 내는 몇몇 출판사들은 80년대쯤 이 따위 번역으로 ‘전집’들을 내놓고 아직도 팔고 있다.) 그 뒤 세르비아어 전공자에 의한 제대로 된 번역이 문지에서 나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올 초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문지의 대산세계문학전집은 이런 점에서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전공자에 의한 원문 번역에 충실한 데다 대산재단이라는 ‘자본’에 힘입은 탓이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번역이되 국내에 아직 소개가 안된 작품들을 제대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난 1월 크로아티아를 건너 사라예보를 거쳐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국경 언저리의 동네 비셰그라드를 찾은 것도 사실은 이 소설과 이보 안드리치 때문이었다. 발칸의 험준한 산맥으로 이뤄진 옛 유고슬라비아의 세 나라를 거치는 동안, 창밖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고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사정이 좀 나은 크로아티아를 지나 보스니아로 들어서는 순간 혼자만의 자동차 여행이 주는 호젓함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도로가에 면한 마을마다 불에 타고 무너지고 폭파된 집들이 즐비했다. 이 나라를 할퀴고 간 전쟁의 상흔은 여전한 현재성으로 생생했던 것이다. 가톨릭 성당이 우뚝 선 마을을 지나면 무슬림 사원이 세워진 마을이 나타나고, 그 곳을 지나면 다시 기독교 교회가 보였다. 발칸의 마을들이 산맥을 등줄기로 하여 중첩된 계곡들로 이뤄져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지형의 독특함이 이런 계곡마다의 종교적 다양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형적 특성과 종교적 다양성은 이 지역에 고유한 ‘종족적 민족주의’(이 말을 나는 오승은의 <동유럽 근현대사>에서 배웠다)와 결합하여 끔찍한 살육과 전쟁을 낳았다. 바로 이러한 종족과 인종과 종교의 교차점에 ‘드리나 강의 다리’와 그 다리가 세워진 도시 비세그라드가 있다. 몬테네그로에서 발원한 드리나 강은 비세그라드에서 르자브 강과 만나 사바강으로 향하고, 다시 사바강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다뉴브 강과 합쳐져 흑해로 흐른다. 드리나 강은 동로마와 서로마의 자연적 국경이었고, 따라서 정교회와 가톨릭의 경계이기도 했다.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점령으로 무슬림이 진출했으며 상당수 유대인들도 디아스포라의 오랜 역사를 거쳐 드리나 강 인근에 정착했다. 1차 대전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과 세르비아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400여년 역사를 가진 마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 다리‘(드리나 강 다리의 원래 이름)가 파괴되었다.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시작한다. 네 개의 종교가 겹쳐지고, 서너 개의 민족이 ‘다리’를 건너며 서로 어울리고 살았던 비세그라드의 역사와 전설, 흥망과 성쇠의 과정이 소설을 큰 줄기를 이룬다. 다리가 세워져 파괴되기까지의 장구한 세월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이나 길이에서 모두 대하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 지역 특유의 민족적 설화와 에피소드들이 점점이 박혀져 소설은 아주 풍부한 이야깃 거리로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마르케스 소설을 읽는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문장의 유장함, 설화적 풍부함, 전설과 판타지의 결합 등 소설적 웅장함과 세부를 두루 갖추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특정한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인물들이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아, 인종과 종교의 전쟁으로 얼룩진 이 동네에도 이만한 작가가 있구나 하는 것이 책을 펼치며 든 생각이었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에피소드는 비세그라드의 아름다운 여인 파타의 죽음 이야기. 이 도시의 반대편 끝에 벨리 루그와 네주케라는 마을이 있다. 벨리 루그에는 이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파타가 살고, 네주케는 함지치 형제들이 산다. 파타는 함지치 형제들의 무스타이베그에게 구혼을 받지만 단호히 거절한다. 그녀의 아버지 아브다가가 무스타이베그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그 보답으로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게 된다. 파타가 시집가는 날, 말을 타고 신랑의 집으로 가는 도중 그녀는 드리나 강의 녹색 물결 위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슬기로워라. 어여뻐라, 아브다가의 아름다운 파타여!”라는 전설같은 노래) 사라예보에서 해발 1500미터 고지 가파른 벼량을 옆에 둔 도로를 따라 운전하면서 이 슬픈 죽음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가끔씩 차를 세워 녹색의 드리나강을 바라보기도 했다.


드리나 강의 다리 중앙 교각에는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는 다리를 만드는 것을 방해하던 요정을 달래기 위해 쌍둥이 아이들인 스토야, 오스토야가 산채로 매장되어 있고, 그 구멍으로 쌍둥이를 잃은 어머니가 젖을 주었다는 이야기. 다리 건설을 방해하던 농부가 터키 지배자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산채로 묶여 죽어가는 이야기. 비세그라드에서 처음으로 호텔을 열어 전성기를 구가했던 유대인 여인 로티카의 이야기. 어느 밤 ‘타짜 도박사’에게 홀려 전 재산을 탕진하는 이야기. 이런 판타지적인 스토리는 흥미로우면서도 발칸 사람들의 어떤 은밀한 믿음과 사유방식을 엿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국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스토리들. 이 책의 전반부는 터키 지배의 시대를, 후반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후반부의 오스트리아적 근대성보다는 전반부의 전근대성이 오히려 발칸 고유의 정서를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이 가진 다채로움. 터키와 유대, 슬라브, 독일, 헝가리 식 이름들의 기묘한 공존)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상인 알리호좌가 오스트리아군과 세르비아 군의 포격전이 벌어지는 날, 모든 주민들이 사라진 마을에서 부서진 다리를 보며 죽어가는 순간이다. 피난가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가게에 홀로 숨어 전쟁이 포성속에서 “고요한 감미로움”을 맛보는 순간, 그의 집 위로 포탄이 떨어지고 무너진 다리처럼 그도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한가지는 불가능하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영원한 건축물을 세워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고귀한 정신을 가진 위대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영원히 이 세상 어디에서든 자취를 감춰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설을 보니 이보 안드리치는 1941년 독일의 유고 침공 직전까지 베를린의 유고 대사를 지냈고,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곧바로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구속의 기간동안 이 소설과 보스니아 3부작을 써냈다고 한다. 무슬림의 보스니아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대학을 보내고, ‘제국’의 수도인 빈에서 공부했으며, 정교회의 세르비아에 정착했던 그의 삶은 이 옛 유고 연방의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채롭다. 안드리치는 1975년에 죽었으니 티토의 유고 연방이 아직 해체되기 전이고, 1990년대 초반 세르비아가 벌인 인종학살을 보지 못했으니 다양한 종교와 민족들의 공존과 조화를 꿈꾸었던 그의 희망은 그때까지 살아있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리호좌가 소망했던 바는 그의 바램이기도 했을 것이다.

 

드리나강의 다리가 있는 도시 비세그라드(Visegrad)는 ‘높은 언덕의 요새’라는 뜻이다. 몽골과 터키 등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던 동유럽에는 높은 곳에 요새를 많이 만들었는지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가 여럿이다. 체코의 비세그라드는 이 나라의 민족주의 음악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 첫 번째 곡의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헝가리의 비세그라드는 14세기 보헤미아, 헝가리, 폴란드 국왕이 모여 세계 최초로 평화회담을 연 곳이다.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비세그라드가 바로 이 소설의 발원지다. 이 도시의 ‘카피야’는 아예 이보 안드리치 타운이라는 소설가 이름을 딴 동네가 있다. 이 소설가의 동상이 또다른 이 동네의 유명인 테슬라와 함께 서 있고, 다리를 만든 메흐메드 파샤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2018년 1월 말, 동양인은 아무도 없는 이 다리 위에서 “머니, 머니”를 외치며 따라붙은 이 동네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이보 안드리치의, 이보 안드리치를 위한 이 도시를 떠났다. 

드리나 강의 다리와 그 위에 놀고 있는 보스니아의 아이들, 다리를 만든 메흐메드 파샤, 거리의 벽에 그려진 이보 안드리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기병 2019-04-1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길 다녀오셨군요.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세계 곳곳에 고통과 한이 서려 있지만, 특히 드리나 강의 산하에는 그 고통과 한의 시공간이 첩첩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이름만 들어도 신음소리가 들려 올듯한 보스니아니 세르비아니 발칸이니 하는 장소입니다.신음하며 죽어간 생명이 뼈를 묻었으니 세게는 그 질량 이상으로 무겁게 슬픕니다. 드리나강의 다리를 읽기 시작하면서, 다리의 전경 사진을 보고싶어 찾다가 이 글을 읽었습니다. 고맙고, 부러워하며 읽었습니다.
머니, 머니하며 따라붙는 아이들이 슬프군요.
감사합니다.

모든사이 2019-04-13 16:27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드립니다. 의외로 안드리치의 소설은 여러 권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더군요. 노벨상 수상자의 후광 덕분인지는 몰라도. 발칸을 여행하는 것은 즐겁기보다는 차라리 슬픈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이고, 수백년 동안 유럽의 변방/아시아의 변방/투르크 세계와 서구 사이의 경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그 충돌을 모두 감당해야 했던 서글픈 동네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 조차도 오리엔탈리즘인지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