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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기호를 넘어선 무언가를 인식한다. 표기된 문자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간을 읽는다는 말은 그러한 부분을 어떻게든 말로 하려고 한 사람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표현일 것이다. ‘읽는다’는 말에는 어딘가 또 다른 세상을 느끼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열심히 읽으려고 하는데도 전혀 ‘읽어낼’수 없는 경우도 있다. 책을 펼치고 적혀 있는 사실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찾아보면서 읽지만 말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뭔가에 가로막힌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p23~24 낮고 농밀한 장소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책을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 같다. 슬픔의 비의, 일본에선 영혼의 문장가로 불린다는 와카마스 에이스케의 대표적인 에세이로 책은 얇지만 결코 얕지 않은 문장이 문장을 되풀이해 읽고, 소리 내어 읽게 만든다. 2016년 상반기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3.11 대지진 이후 오랫동안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에 닥친 고난과 슬픔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내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넌 그런 사람이잖아" 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조금은 불쾌해질 것이다. 물론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반론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무지의 자각'을 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말 모르겠다고 느끼는 것이 철학의 원점이다. 무엇인가에 대해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마음속에 무지의 방을 만들어야 한다.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탐구를 계속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p29 끝을 알 수 없는 '무지'
읽는다는 것은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글로 된 말은 언제나 읽는 행위를 통해서만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다. 읽는다는 것은 말을 탄생시키는 일이다. /p94 꽃을 공양하는 마음으로
힘들었던 그 시간을 견디게 해주었던 건 그 어떤 것도 아닌 글, 일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책을 가까이하게 된 계기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 싶은 마음이었을 때 자연스럽게 가까이하게 되었으니까. 같은 책이 많이 있다고 해도, 내게 위안이 되는 책은 따로 있고 읽는 사람마다 밑줄을 긋는 부분은 다 다를 테니 말이다. 때론 기계적으로 읽어가고 있는 나를 보며 당황하기도 한다. 분명 읽었던 책인데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펼쳐보기도 했던 경험도 꽤 잦은 편이다. 최근에도 가벼운 글 위주로 읽다가 모 드라마에서 남자가 수면제가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여자에게 편하게 잠들게 해주고 싶다며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고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책을 읽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때 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소리 내어 읽었던 문장들이 옮겨 적어보고 싶은 문장들이 꽤 많았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과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자신의 무력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드러내면서 간절하게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닐까 싶다. 변화한다는 것은 자신을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미지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다. /p101 신뢰의 눈길
읽는다는 것은 표기된 글자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글자를 통해 그 진의의 깊이를 느끼는 것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미지의 타인에게 '말'을 전하는 행위이다. 언어란 '말'의 모습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113 모사할 수 없는 그림
밤에 조금씩 아껴 읽었던 책, 대부분 짧은 에세이 형식의 글이지만 농밀하고 깊다. 되풀이 해 읽는 구절이 꽤 많아 소리내어 천천히 읽는 부분도 많았더랬다. 눈으로 천천히 읽고, 조용히 소리내어 읽고, 표시해 둔 부분을 몇 번이고 되짚어 다시금 소리내어 읽어봤다.
잠이 안오는 밤, 누군가 이 책을 조용히 읽어준다면 잠이 솔솔 올 것만 같다. 갈무리 해 둔 문장들은 손글씨로 옮겨적어봐야겠다.
시가 스며드는 것은 소설 속만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모든 부분에 스며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시를 통해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시를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내면에 있는 시정이다. 시구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다른 모습을 한 시정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영혼의 노래이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시는 살아있는 자뿐만 아니라 산 자와 세상을 떠난 자의 사이를 이어주기도 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시를 통해 침묵 속에서 그들과 만날 수 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p137 시는 영혼의 노래
고전이라고 불리는 서적들은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썼지만 동시에 개개인의 독자한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한 것이다.....(중략).....독자란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다. 작가도 느낄 수 없었던 진정한 의미를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의 심층까지 발견해내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고유의 역할이 독자들에게 위임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책을 펼칠 때마다 몇 번이고 상기해야 한다. 또한 문학이란 유리책장에 장식으로 꽂힌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단 한 번뿐인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p161~162 문학의 경험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