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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머무는 밤
현동경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월
평점 :

일흔 여섯 번의 밤, 현동경의 여행에세이는 길을 걸으며 낯설고 새로운 곳을 보고자 떠났지만 길 위에서 만난건 '사람'들이었다. 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과 여행에 관한 순간들의 이야기를 <기억이 머무는 밤> 에 오롯하게 담았다. 때론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듯 했고, 가슴이 탁 트이는 사진을 볼 때면 길 위에서 그 사진을 찍었을 순간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잔뜩 낡아 버린 신발과 헤진 옷들 사이 언제 꺼내 보아도 그대로일 것이라 믿었던 사진은 애석하게도 때때로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 한 장에 녹아 있는 감정과 온도를 머금은 기억은 언제나 머물다 가는 것이기에 구태여 붙잡지 않기로, 의연한 척하며 글을 적어 갔다. 그렇게 쌓아 온 글에는 '사람'이란 말이 '여행'의 딱 곱절만큼 나온다. 이제는 습관처럼 네모난 세상을 들여다보거나 누군가에게 쉬이 떠남을 권하지 않고 그저 사람을 위한 여행을 한다. 이 책에는 그 여행길 위에서 언젠가 함께였던 시간을 위한 글들을 적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 프롤로그
그녀의 글에 담긴 주체는 모두 '사람'이었다. 여행을 이야기 하는것 같았지만 그녀는 '사람'을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것 같았다. 늦은밤, 고요한 새벽, 그녀의 글은 그렇게 조용한 시간 한글자 한글자 문장을 음미하고 짚어가며 읽고 싶어지는 글이기도 했다. 문장 사이 담긴 그녀의 사진들은, 문장과 함께 읽기에 더 없이 좋았고 문득 나도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지는 충동을 일게 했다. 글을 적어간다는게 어렵게 생각되었는데, 조금씩 기록하고 남기다 보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응원같았던 그녀의 글. 오래도록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고 무너지며 기꺼이 동요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끝맺음 하는 그녀의 글은, 그녀의 다음 여행에세이도 기다려지게 한다.
#더해 가는 일상 비워 가는 여행
그런데 왜인지 우리의 삶은 비워 내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순간의 관심을 얻는 것보다 헤어나는 것이 힘들고,배낭 가득 필요한 짐을 꾸리는 것보다 없어도 될 물건을 가리는 것이 어렵고, 추억을 만드는 것보다 잊는 것이 아파서 기껏 채워놓은 일상을 비워 내기 위해 떠난 여행길은 언제나 고되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내 배낭은 무겁기만 하고 머릿속은 복잡하며 스치는 이의 시선을 마음에 두고 가슴 한편에 쉽사리 잊히지 않는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다. 고작 사흘남짓 떠나는 여행에도 온갖 것을 배낭에 욱여넣어 가며 잠깐의 불편함을 피하고자 하다가 결국엔 일상을 그대로 짊어지고 떠나게 돼 버린 나의 지난날 처럼 말이다.
그러다 문득 떠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줄어드는 내 배낭의 무게만큼 딱 그만큼 일상에서 한 걸음씩 벗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불과 며칠 밤 사이의 일이다. 어쩌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빼내어지는 배낭 속 무언가처럼 어지럽게 뒤엉킨 삶 속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뺄셈할 수 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일상에 돌아와 더 많은 것을 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덜어 내고 담아 가는 것을 반복하며 살아갈까. 그간 여러 수식어를 붙여 가며 나 자신을 여행에 그대로 가져가기 바빴던 나는 앞으로 내려놓는 것에 얼마나 과감할 수 있을까. 나는여전히 잘 모르겠다. /p24~27
#세상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많은 인파 속에서 왜 혼자 밥을 먹는지, 출근길 드라이가 잘 됐는지, 오늘 입은 옷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 우리의 방대한 걱정에 비해 세상은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나마저도 스스로에게 관심리 없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혹은 언제 행복한지, 하다못해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능력은 부러워하면서 내가 뭘 잘하는지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타인의 일에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위로는 없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지만 내일이 오면 오늘은 지나간다. 이렇게나 매정한 하루 속에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얼마큼이었는가. 어쩌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답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위로일지도 모른다./p91~93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