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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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시작이 소설의 도입부로 시작해서, 어...? 하며 앞으로 넘어가 다시 읽어보고 시작했던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미노루가 소설과 현실을 오가며 진행되는 글은 소설 속에 머물다 현실로 돌아오는 미노루의 실상을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소설 속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유, 미노루는 생각에 잠긴다.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만나는 것도 아닌 경우,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는 이유, 또는 만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p14

"당신에게서 하토를 빼앗겠다는 뜻이 아니야.  앞으로도 하토는 당신 딸이고, 지금까지 만나던 대로 만나면 돼."

그러나 미노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받아주지 않는 걸까.  돈이 좀 더 있다고 곤란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받아왔던 것처럼 받아도 '아주 평범한 가족들이 다 그렇게 하는 것처럼' 살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미노루에게는 양육비를 지불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불할 권리도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런 권리는 없는 것일까(이 점에 대해서는 오타케와 의논할 생각이고, 나기사에게도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대답을 보류했다.) /p60


결혼은 하지 않았었지만 미노루와 나기사 사이엔 하토라는 딸이 있고 나기사는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미노루에게 하토의 양육비를 받고 있었다.  미노루와 지금의 남편 사이에서 갈등했을 나기사의 현실은 미노루를 선택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집에 오자마자 TV를 켜는 남편, 어쨋든 딸과 남편이 있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하토에게 동생이 생기면 가정에도 조금쯤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 어느 것이나 사야카는 조금도 원치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원하는 게 없어진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안도해도 좋을지 어떨지 사야카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원하는 게 많은 인생도 피곤하고 성가실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하나도 없는 인생은 과연 어떨까. /p83

부부란 것은 참 그로테스크하다.  결혼한 후로 몇 번이나 했던 생각을 나기사는 지금 또 한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도, 아니 상대가 귀찮게 여겨질 때조차, 밤이 되면 같이 자고, 아침이 밝으면 같은 식탁에 앉는다.  조그만 불쾌함도 말의 어긋남도,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일상 속에 묻히고, 밤과 낮이 되풀이 되고, 부부가 아니면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무엇이 되고 만다.  세상에서는 그런 걸 인연이라고 하리라.  그러니 인연이라는 것은 나날의 조그만 불쾌함의 축적이다. /p268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등장하지만, 미노루를 눈여겨보게 된다.  일상 이야기에서 읽던 소설로 넘어갔다가 벨 소리나, 누군가의 인기척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책읽는 몰입도가 엄청난 사람인 듯 보여진다.) 그의 모습은 때론 혼란스럽기도 하다.  글 속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꽤 더딜 때도 있으니...  '소설 속의 소설' 형태로 진행되는 글은 등장인물들의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어서 더없이 잔잔한 듯하면서도 뭔가 일어나길 바라는 심리가 조금씩 생기기도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끝났다'라는 뚜렷한 전개가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독히도 똑같은 매일매일을) 위로하는 글인 듯하기도 했다.  찬란했던 한 시절을 지나 저물어가는 중간 즈음에 있는 중년의 이야기.  나름의 즐거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순간이지만 안정감을 찾아 의지하기도 한다.  인생은 꿈처럼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일상은 조금은 더 애틋하고 그들의 시간에 머물고 싶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에 미노루가 현실이 아닌 미처 다 읽지 못한 소설을 펼치는 것처럼, 우리도 어쩌면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글을 읽는 건 아닐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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