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장난감 더미 위에 부유하듯 너부러진 아기를 회색 커버 안에 누이고 뼈마디가 비틀어진 몸 위로 지퍼를 채웠다. 여자아이는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아직 살아 있었다. 그 아이는 사나운 짐승처럼 맞서 싸웠다. 싸움의 흔적들, 아이의 말랑한 손톱 아래 박힌 살점들이 발견되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아이는 몸부림쳤고 경련으로 꿈틀거렸다. 두 눈을 부릅뜬 모습이 애타게 공기를 찾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는 피가 가득했다. 폐에 구멍이 났고 파란색 서랍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p9


아기가 죽었다.  라는 강렬한 한 문장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전문직 여성이었던 두 아이의 엄마인 미리암이 사회생활을 하고자 마음먹고 보모를 들이기로 결정하면서 루이즈를 추천받아 가정에 들이게 된다.  아이들도 한 번에 루이즈를 따르고 그녀가 집에 오면서부터 무질서한 가정에 안정이 찾아드는 걸 느끼고, 미리암과 폴의 관계에도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기에 어린아가들이 저렇게 무참하게 살해 당했을까?



미리암은 루이즈와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머리에 스쳐가는 어떤 생각, 잔인하지는 않지만 부끄러운 그런 생각을 엠마에게 절대 털어놓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우리 자신만의 삶, 우리 자신에게 속한 삶, 다른 이들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가 자유로울 때에만. /p53
작은 공원들, 겨울날의 오후들.  가랑비에 낙엽이 쓸려간다.  차가운 자갈이 날아와 아이들 무릎에 들러붙는다.  한적한 산책로의 벤치에서 세상이 더 이상 원치 않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비좁은 아파트, 음울한 거실, 무위와 권태로 움푹 파인 안락의자를 피해 밖으로 나온다.  팔짱을 낀 채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떠는 편이 낫다.  오후 4시, 아무일 없는 하루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오후의 한가운데,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버렸음을 알게 되는 시간, 이제 저녁이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 데도 소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p141~142
아당이 태어나고 몇 달 후, 그는 집을 피하기 시작했다. 없는 약속을 지어내고, 집에서 먼 동네로 가서 혼자 몰래 맥주를 마셨다.  그의 친구들 역시 부모가 되었고, 대부분은 파리를 떠나 교외나 지방으로 또는 유럽 남쪽 따뜻한 지역으로 갔다.  몇 달 동안 폴은 무책임하고 한심한 어린애가 되었다.  비밀이 생겼고 도망을 치고만 싶었다.  그렇다고 자신에 대해 관대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진부한지 잘 알았다.  그가 원하는 건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게 전부였다.  자유롭고 싶은 것, 좀 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 다였다. 조금밖에 살아보지 못했는데 너무 늦게야 그걸 깨달은 것이었다.  아버지라는 옷은 그에게 너무 크고도 침침해 보였다. /p154

아이들은 기쁨을 주는 존재이지만 아이들이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부모들의 인생에서도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적정시기이기도 하다.  부부가 일을 하러 출근하는 동안에만 집에 와서 두 아이를 돌봐주는 루이즈가 집안 살림과 요리까지 깔끔하게 해주면서 미리암은 그녀가 자신에게 온 천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르고 그들의 휴가에 루이즈도 동행해서 함께 여행을 다녀오게 된다.  루이즈의 남편은 그녀에게 빚만 남기고 죽었고, 그녀의 딸은 어느 날 사라져서 생사도 알 수 없다.  허름한 원룸에서 혼자 사는 그녀에게 밀라와 폴을 돌보고 미리암과 폴 부부를 챙기는 일은 루이즈에게 점점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미리암의 팔을 잡고, 꼭 끌어안고, 도움을 청하고 싶다.  자기는 혼자라고, 너무 혼자라고, 그리고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미리암에게는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녀는 혼란스럽고 떨린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p192
처음으로 그녀는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몸에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뼛속까지 느껴지는 통증을 생각한다.  늘어가는 병원비.  그리고 유리창이 더러운 아파트에서 앓아누워 보내는, 병든 노년의 불안, 그것은 강박증이 된다.  그녀는 이곳이 끔찍하게 싫다.... <중략>....몸속에서 증오가 솟아오른다.  증오는 그녀에게로 와서 노예근성과 어린아이 같은 낙관을 저지한다.  모든 것을 흐려놓는다. 그녀는 슬프고 혼란스러운 꿈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른 이들의 내밀한 삶,  그녀는 절대 가질 권리가 없는 내밀한 삶을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들었다는 느낌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돈다.  그녀는 한 번도 자기 방을 가져보지 못했다./p203~204

루이즈와 미리암이 조금씩 서로를 밀어내는 계기가 뭐였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미리암 부부와 여행을 다녀와서부터 였을까?  아니면 루이즈의 독촉장들이 미리암과 폴의 집으로 오게 돼서 루이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서 부터였을까?   그들 부부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한편 그냥 넘어갔으면, 아무도 몰랐으면 했던 루이즈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  약속 드려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물론 그냥 끝내면, 모든 것을 멈추면 된다.  하지만 루이즈는 그들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의 삶 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이제 밖으로 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이 그녀를 밀어내도 그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작별 인사를 해도 그녀는 문을 두드려대고 안으로 들어올 것이며, 상처받은 연인처럼 위험할 것이다. /p228

밀라와 아당이 점점 커가며, 루이즈는 갑자기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들 부부에게 아기가 더 태어나야 자신이 이 집에 있을 명분이 생길 것이라며 아기 낳기를 은근히 압박하는데, 미리암은 이런 루이즈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고 그녀를 내보내고 싶지만, 자신의 집안, 아이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를 그냥 내보내기엔 뭔가 찜찜하고, 그들 부부가 알고 있는 루이즈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그제서야 궁금해졌지만.... 이미 그들의 관계는..... 이야기의 뒷부분에서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결말은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루이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미리암과 조금 더 터놓고 이야기했더라면, 자신의 내면에 담아두지만 말고 누군가와 나누었더라면...철저한 이방인이었던 루이즈, 나는 루이즈를 모른다.   루이즈는 사건 현장에서 죽으려 했지만 죽지 못하고 살아있게 되었고 유령처럼 누워있지만 과연 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을지.... 읽고 또 읽었지만... 그녀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늘 아이는 잠시의 행복일 뿐이라고 했다.  예측한 대로 되는 건 없고 늘 초조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수도 없이 바뀐다고.  동그란 아기 얼굴이 알지 못하는 새. 어느덧 자라서 심각한 얼굴이 되어버린다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아이들을 아이폰 화면에 담아둔다. /p275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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