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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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열심히 할까? 

길에서 만난 이웃과의 대화, 목욕탕 탈의실과 친척 모임에서의 대화.  모이기만 하면 끝없이 이야기를 하던 어른들. 

즐거운 듯 함께 웃는 모습을 보면 대체 무슨 내용인지 몹시 궁금했다. 

내가 "무슨 얘기야? 응?" 하고 끼어들면, "애들은 몰라도 돼." 하며 철벽방어. 

어른들의 길고 긴 대화가 부럽기도 하고, 또한 수수께끼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렸을 때의 나를 만나러 간다면 가르쳐주고 싶다.  "있지. 어른들은 별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 /p29~30


언제부터인지 나이에 대해 조금 무뎌지기 시작한 것 같다.  나이는 들어가고 있지만 그에 비해 철들고 있는 건 모르겠는 요즘.  부모님 가까이 오고 나서부턴 부쩍 나이 들어 보이시는 부모님을 뵈며, 나도 많이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의 세상을 살아가며 '어렸을 적' 이라는 말을 쓰기에도 조금은 많은 듯한 , 마흔과 오십 사이 어느 날 문득



"엄마, 아이도 없는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어쩌나 걱정돼?" 

엄마는 잠깐 사이를 두고는, "응. 걱정돼." 하고 대답하신다.   /p49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어렸을 적 늘 생각했었다.  가족도 그대로, 나도 그대로.  영원히 이대로 변하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지금도 고령의 부모님을 보며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p79


어릴땐 시간이 빨리 흘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어른스러워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같은 것도 있었고 이십 대가 되어선 하고 싶은 일은 꽤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삼십 대에 접어들며 이십 대를 돌아보게 되고, 마흔이 된 지금은 어린 시절부터의 시간들을 거꾸로 되짚어보는 시간들이 꽤 많아진 것 같다.  나이 들어가며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 과거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좋았던 시간들을 회상하기도 하고 고령의 부모님을 보며 시간이 멈추었으면, 아니 지금에서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 년이 눈 깜짝할 새 사라졌어." 

연말이면 어른들이 그 말을 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무척이나 이상했다.  어린 나는 일 년이 엄청나게 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리고 나도 "세월이 너무 빨라." 라는 말로 서로의 쓸쓸한 기분을 조용히 공유하게 되었다....<중략>..... 

"있잖아, 우리 다음에는 예약하고 오자."

이렇게 날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있잖아, 우리 다음에.....' 쌓인 것을 다 쓰지 못한 채 우리의 인생은 끝나겠지만, 그래도 쌓을 수 있을 만큼 쌓아두고 싶다.  /p133~134

아직 더 놀고 싶은데.  어느새 놀이의 원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아직도 젊은 사람들 주위에서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리고 있다. /p170


자매들 간의 우애가 유별난 편이라 세 자매가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하곤 하는데, 결혼을 한 동생들과 달리 미혼인 나는 부모님에겐 아직도 '아이' 인듯 하다.  아이도 없는 미혼의 딸이 자신들이 없으면 어쩔까 걱정하시는 건 좀 오래되긴 했지만 이 글을 통해 읽다 보니 순간 마음이 따끔!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던가?  결혼의 여부를 떠나, 지금의 삶을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면 원하는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좋다고 응원해주시면서도 한편 걱정스러움을 가끔 비치는 부모님을 뵈면 죄송스러운 마음도 든다.  마흔을 훌쩍 넘은 오늘까지의 삶은 반짝이고, 서글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살아왔던 흔적들이 아닐까?  그녀가 더 많은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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