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19세기 노예탈출 점조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흑인 소녀 코라의 자유를 향한 끝없는 탈출과 당시 백인과 흑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살풍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많은 찬사를 받았던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아 읽는데 2주가 넘게 걸렸고 글을 읽으며 상상되는 상황들이 때론 너무도 무겁제 다가와서 쉽게 읽지 못했던 책이기도 하다.
비참 속에 담긴 비참, 비참에도 질서가 있었고, 그 길을 따라야만 했다. /p34
"이 나라가 어떤 덴지 알고 싶다면, 내가 늘 하는 말이다만, 기차를 타봐야 한다. 기차가 내달릴 때 바깥을 보면, 미국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될 거야." /p84
태어나면서 삶이 결정 되는 사람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고 물건 처럼 팔려다니고 주인의 의지대로 필요에 의해 취급되기도 했던 흑인들의 삶. 그들에게도 자유권이 주어지기도 하고 그 권리를 팔고 사기도 하지만 백인들에 의해 또다시 납치되어 다른 주로 팔려가게 되면 그마저도 소용이 없게 되고마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의 시기. 코라는 자신이 살고 있던 랜들가의 농가에서 할머니 아자리, 엄마인 메이블과 함께 살아왔지만 어느날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린 자신을 지옥과 같은 농가에 두고 떠나자 코라에게 남은건 아자리와 메이블이 관리해왔던 아주 작은 땅덩이가 다였다. 반 평이 채 되지않는 작은 땅 조차도 코라에게 빼앗으려하는 같은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지친 코라. 그들에겐 이런 삶밖엔 없는 것일까? 시저가 농장 밖의 세상, 자유로움을 이야기 하면서 코라도 이곳을 떠나 저곳의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몇 달이 지나면서 코라와 시저는 점점 더 스스럼없이 랜들 농장에 대해 터놓고 말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예전에 노예였던 누구에게나 적용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농장은 농장이었다. 자신의 불운이 유별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진짜로 끔찍한 사실은 그것이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전에도 그랬듯 곧 악단의 소리가 지하철도에 대한 그들의 대화 위로 겹쳐질 것이다. 코라는 악단에 집중하지 않는 그들이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럴 리 없었다. 누군가의 재산이 아니라 자유인 신분으로 연주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여전히 소중하고 새롭게 느껴질 테니까. 노예마을에 유일한 위안을 준다는 부담감 없이 멜로디를 힘차게 시작하는 것이. 자유와 기쁨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p120
자유인 신분이 된 흑인들이 제 주인들을 피해 달아났듯이, 백인들 역시 그들 주인의 폭정을 피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이 땅에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이상은 다른 이들의 이상을 부정했다. 코라는 마이클이 랜들 대농장 뒤편에서 독립선언문을 암송하는 것을 여러 번들었다. 성난 유령처럼 마을을 떠돌던 그의 목소리, 코라는 그 말들을 거의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정말로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것을 쓴 백인들 역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흙처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든 자유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했다면, 아니었다. 코라가 경작하고 일했던 땅은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코라는 백인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죽여서 그 종족의 미래를 씨앗부터 말살해버리는 대학살의 효율성을 자랑스레 얘기한다는 것을 알았다. /p136
백인들 조차도,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아 딸을 넓혀갔음에도 다른 인종을 배척하는 과정이나 극악스러움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극악스럽다. 민심을 조종해서 서로를 감시하고 신고하게 하고 이들을 몰래 돕는 같은 백인끼리의 처벌도 잔인하기 그지없다. 사회적 시대상과 인간의 잔인함.. 이야기는 르포식으로 인물중심으로 이어가고 있지만 그러한 전개가 책을 읽는데 상상력을 더 자극하기도 했다. 노예사냥꾼, 노예들의 시체를 의학 학교에 학습용으로 납품하며 이득을 챙기는 시체 매매꾼 힘든 삶을 사는 이들의 뒷면에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백이이 목화를 따는 건 본 적이 없는데요." 코라가 말했다.
"나도 노스캐롤라이나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군중이 사람의 사지를 찢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틴이 말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뭘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하는지 같은 것에는 입을 다물게 돼." /p186
감옥과 다름없는 곳을 누군가의 유일한 피난처로 만드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코라는 생각했다. 그녀는 속박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그 그물 속에 있는 것일까. 도망자 신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었다. 숲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들로 빽빽하지만 바깥에서, 텅 빈 초원에서 보면 그 진짜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자유가 된다는 것은 사슬과는 혹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대농장에서, 그녀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바람을 쐬고 여름 별을 바라보며 제한 없이 움직였다. 작음 안의 큰 곳이었다. /p203~204
노예 소녀 코라가 인간 취급받지 못했던 19세기 미국 남부 노예들의 비참한 삶, 인종 우월 주의에 근거한 광기, 그 긴박함 속에서도 자기 양심을 따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조직이었던 '지하철도'요원들의 노력이 코라의 탈출여정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자유를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렸던 코라, 긴 여정을 끝내고 안식을 찾았을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