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1994년 김일성 사망 시점에 시작된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자신과 인연을 맺고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먹고 살기 위해 고향땅을 등지고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지금껏 살아왔던 북한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게 됩니다.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문제점, 출신 성분으로 구분되는 인류 최악의 연좌제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대변자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한 반디는, 북한 주민들이 실제 겪고 있는 고통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하나하나 수집하여 자신의 품 속에 녹여두었습니다.  각종 사연들이 담긴 소문들과 실제 벌어졌던 사실들을 기초하여 모든 것을 자신의 작품들에 담기 시작하였습니다./출간에 부쳐

 '반딧불이'를 뜻하는 '반디'작가는 북한에서 활동중인 작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반출한 책이라니, 이 책소개 자체가 소설인 것 같지 않은가?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만의 사상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며 무대위의 인형들처럼 조정하려 들고, 최소한의 인권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실상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7편의 단편으로 이어지고 있는 글은 한 번에 읽어지지 않아 조금은 긴 호흡으로 읽었던 책이기도 했는데, 마침 이 책을 읽으며 수련 작가의 <비밀의 시간>이라는 글의 배경이 탈북지원자들을 돕는 단체가 배경이 되어 탈북자들이 왜 목숨을 걸고 그곳을 탈출하고자 하는지가 너무도 잘 그려져 있어 번갈아가며 읽기도 했던 책이었다.  



40p/ 탈북기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그 생명이 복되기를 바라서이지 한뉘를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으랴!  만약 그런 어머니가 있다면 그것은 어미니이기 전에 죄인 중에서도 가장 잔악한 죄인이 될 것이다! 

73p/ 유령의 도시
전율!.... 방송에서 울린 그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금방 한경희의 눈 앞에서 이루어진 사변은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기적이기 전에 전율을 자아내는 무서움이었던 것이다.  죽음의 계단을 넘는 일이라 해도 그렇게는 움직이지 못하리라!  불과 사십오 분 안에 도시에 널려 있던 100만의 군중이 광장에 모여들다니! 무슨 힘이 그 무슨 무서운 힘이 이 도시로 하여금 이런 불가사의한 사변을 낳게 하고 있는 것일까?

반디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이런 세상이 있는 걸까?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조정하는 수준의 사회.  웃을 일이 없음에도 웃어야 하고, 부모의 죄가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되는 현상,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모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에도 고향으로 달려갈 수가 없다.  누가, 왜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걸까?



122p/ 지척만리
솔뫼라는 고향이 그 어디 도쿄나 이스탄불이라도 된단 말인가! 제 나라 제 땅 안에 있는 고향땅이 이처럼 아득하고 막막한 곳으로 되다니!... 허락한다면 천리든 만리든 걸어서라도 떠나보련만 그마저 허용하지 않는 '여행질서'였다.  명철은 목놓아 울며 땅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나 때로는 울음도 반항으로 되는 법이다.  반항 앞엔 오직 가차없는 죽음밖에 없는 이 땅, 그래서 아파도 웃고 쓰거워도 삼켜야만 하는 것이 이 땅의 체질이었다.

178p/ 복마전
"옛날 어느 곳에 열 길 울타리를 빽빽이 둘러친 한 동산이 있었다우.  거기선 늙은 마귀가 수천의 종들을 거느리구 있었구요.  한데 놀라운 건 그 동산의 열 길 울타리 안에선 언제나 웃음소리밖에 들려나오는 것이 없었다는 거였어요.  사시절 하하호호 하고 말이지요.  그건 바로 늙은 마귀가 자기의 종들한테다 온통 웃는 마술을 걸어놓았기 때문이었다나요.  왜 그런 마술을 걸어놓았냐구요?  그야 물론 종들을 학대하는 자기 죄행을 가리우구 우리 동생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합니다 하는 속임수를 쓰기 위해서였지요.  그러자고 다른 동산 사람들이 넘볼수도, 드나들 수도 없게 열 길 울타리두 쳤던 거구요.  그러니 글쎄 생각 좀 해보시우.  그 동산 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디가 아프거나 슬퍼서 엉엉 울어도 그것이 하하호호 하는 웃음소리만 되어 나왔으니 세상에 그처럼 악한 마술이 어디 있고 그처럼 무시무시한 동산이 또 어디 있겠수."

208p/ 무대
"아버지, 얼마나 너절합니까." 

경훈은 자기 뺨을 때리고 발치에 떨어져 있는 비닐병을 집어들며 피를 토하듯 계속했다. 

"이런 쓰레기나 가지고 물어들이고 받아들이며 사람들을 억압, 통제하려 드는 자들이 말입니다.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 달째나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해마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책을 다 읽고도 몇 일을 책을 뒤적였던 것 같다.  몇 글자로 흔적을 남기기엔 참담한 현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버거워 주변일엔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는데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해보게 된다.  아마도 서포터즈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궂이 찾아 읽지 않았을 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브로커, 탈북자등의 손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무사히 빛을 보게 된 것 만으로도 읽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