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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불편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은 참고 넘어가고 옳지 않은 일에도 선배라, 어른이라 경우가 없어도 그냥 참고 넘어가야 바른 사람이라는 인식. 하지만 그렇게 넘어간 일들 때문에 나는 불편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남겠지만 언제까지 참고 넘길 수 있을까? 전자책 체험판으로 먼저 읽었던 문유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제목부터 파격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개인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현직 판사로 재직중이기도한 저자가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21p/ 링에 올라야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끔은 내가 양보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때로는 내 자유를 자제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들과 타협하고 연대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목적이고 나머지는 방편이다.
32p/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현상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개인주의가 조금씩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뿌리깊이 남은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다. 조직과 서열은 출신은 어딜가나 따라다니고 편을 가르고 자신의 편이 아니면 이쪽, 저쪽으로 나누어 가르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건, 행복이라는 것도 내 만족이 아닌 타인에게 보여지는 기준이 되어버린건 그냥 사회현상인걸까?
56~57p/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때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갑을관계, 경쟁관계, 상명하복관계, 나를 평가하고 지배하는 관계, 내가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모셔야 하는 관계에 있는 인간들이 과연 나에게 유용한 생존의 도구이기는 할까? 생존의 위협에 가깝지 않을까?
154~156p/ 문학의 힘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이다.....<중략> 협소한 상식에만 갇혀 있는 인간은 비상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실패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첨단 과학이 발달해도 여전히 더 많은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213p/ 조폭의 의리와 시민의 윤리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이다. 한 점 티끌 없이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누가 당신에게 이익을 주고 누가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는지 정신차리고 보아야 한다. 내부고발자가 시민 이익의 대변자로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권력자들이 긴장한다. 발각될 리스크를 고려에 넣도록 만들어야 대범한 도둑질을 못한다. 조심이라도 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평소에도 사회,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모르쇠를 하며, 내가 손해보는 일이나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사회탓을 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걸 최근들어 조금씩 깨닫고 있다. 혼자 살아갈 수 없어 무리지어 살아가는 인간. 그러기에 질서도, 법도, 타인과의 연대도 필요한 사회다. 그 속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개성있는 삶을 살아도 충분히 이기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는 만큼 지킬 수 있고, 아는 만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책이기도 했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을 읽으며 이렇게나 무지 하고 몰랐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읽기를 하고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 한 번쯤 제대로 마주하고 읽어볼 책이다.
279p/ 우리가 잃은 것들, 에필로그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식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마늠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