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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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p9 <쇼코의 미소>


눈에 띄는 책표지나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다.  <쇼코의 미소>도 그 중 한 권!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먼저 으신 분의 간단리뷰를 보고 바로 구입했던 책이었는데, 책의 첫 장을 넘겨 만난 구절부터 이 책.... 왠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짧은 글이지만 글의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한 권이 다 소설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단편!  개인적으로 단편의 기억이 좋지 않아 살짝 걱정했는데, 왠걸! 이 작가님 뭘까?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힌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p89~90 <신짜오, 신짜오>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p105 <언니,나의 작은, 순애언니>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p145 <언니,나의 작은, 순애언니>


짧은 글이지만 글의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렇게 끝나는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살면서 느끼는 많은 감정들,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고 모를 만한 당연한 일상들이 최은영 작가를 통해 새롭게 다가선다.  글을 읽다보면  문득 궁금하기도, 부끄럽기도, 마음한켠이 싸하게 아리기도 하고, 먹먹해지기도 했다.  확 다가서는 감정이 아니라 잔잔하게 젖어드는 이야기랄까?



우리는 싸움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를 견뎠다.  감정을 분출하고 서로에게 욕을 해서 그 반동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싸움도 일말의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받지 않았다.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않에 있었다. 우리는 예의바르게 서로의 눈을 가렸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야 내가 먼저 그의 눈에서 내 손을 뗐고, 우리는 깨끗하게 갈라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p129~130 <한지와 영주>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한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p174 <한지와 영주>


7편의 단편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탐구하고 표현했던 작가의 감성이 다음엔 어떤 책으로 우리곁에 다가설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작가였다.   폭염이 언제끝날지도 모를 여름의 끝자락, 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그때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으로 갈무리 하려고 한다.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p238~239 <미카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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