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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조금은 으스하게 느껴지는, 어쩌면 조금은 익살? 스럽게 느껴질수도 있는 일러스트 책표지와 제목, 그리고 저자에 대한 소개로 책에 대한 호기심에 읽기도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는 드라마 연애시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얼렁뚱땅 흥신소 등을 만들어낸 박연선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사건 초기, 경찰은 네 명의 소녀가 가출했다고 추정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유미숙은 이성교제 때문에, 황부영은 가정불화, 조예은은 방학숙제, 유선희는 양자를 들이는 문제로 부모와 갈등했다! /p109
막장 드라마를 보다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83세의 할아버지, 응급차가 아무리 빨리 출발해도 골짜기 골짜기 아홉모랑 마을에 도착하기전에 이미 숨을 거두셨고, 아홉모랑의 강씨네는 장례를 치르게 된다. 장례를 치르고 혼자남는 홍간난 여사가 걱정된 아들딸들은 사차원 백수인 손녀 강무순을 할머니 곁에 잠시 놔두고(?) 집으로들 돌아간다. 자고 일어나니 할머니 집에 혼자 남겨진 무순. 삼수생이라곤 하지만 백수, 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 그녀는 그렇게 할머니 곁에 남겨지지만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마시려해도 버스타고 한참을 나가야 하니, 그냥 문명생활을 포기하고 유유자적 백수생활을 즐기는데....
시골에서 놀거리가 뭐 있을까? 마당을 지키는 멍멍이 공이를 산책시키겠다고 줄에 매달아 산책나갔다가 '개를 끌고다니는 미친년' 이라는 소리를 듣고 집안에서 놀거리를 찾는데, 할아버지 책상에서 자신이 어린시절 그렸을거라 추측되는 보물지도!!를 찾게된다. 홍간난 여사가 흘깃 보고는 보물이 있는 곳이 경산 유씨 종택 이란걸 알게 되고, 자신이 어린시절 파묻었던 보물 상자를 찾는 순간 종택의 외동아들 꽃돌이와 마주치게 된다. 무순의 보물상자를 본 꽃돌이는 자신의 누나이자, 15년전 실종된 귀한 외동딸 유선희의 물건이 들어있는걸 보고 놀라게 되는데...
15년 전, 당시 최장수 노인의 백수 잔치에 온 마을 사람이 버스를 대절해 온천으로 관광을 떠난날... 마을이 텅 빈 사이, 네 명의 소녀들이 사라졌다. 당시 사라진 것은 유선희(16)뿐만 아니라, 삼거리 허리 병신' 둘째 딸 황부영(16), 발랑 까지긴 했어도 평범한 집안 딸이었던 유미숙(18), 목사님 막내딸 조예은(7) 모두 네 명이다. 나이도, 학교도, 출신 성분도 다른 소녀 넷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꽃돌이와 사차원 백수 무순, 홍간난 여사는 15년 전 사건에 대해 실마리를 풀어 가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읽으면서 이야기의 사이 사이 등장하는 주마등은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그 부분만 읽어보면 또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한꺼번에 사라진 소녀들의 사건은 강무순이 보물상자를 찾아내면서 결국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으니... 이야기가 점점 진행 될 수록 사라진 아이들의 사건에 대한 진실에 대해 다 알게 되었지만 뭔가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작은 마을 저마다의 사정을 다 잘 알고 있다곤 했지만, 그 속사정까지야 알았을까? 할머니와 강무순, 꽃돌이의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탐정 콜라보, 읽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연일되는 폭염에 지쳐가는 요즘, 이 책과 함께 시원한 곳에서 한창인 여름에 빠져보는건 어떨까?
술래가 되면 어쩔 줄 몰라 했다는 유선희. 처음으로 술래가 됐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숨어 있는 아이들을 찾다가 찾아가 끝내 못 찾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좌절을 느꼈을까? 그러니까 울었겠지. 그다음부터 술래가 되지 않았을 때 뭐라고 생각했을까? 끝까지 몰랐을까? 자기가 술래가 되지 않는 이유를,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긴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 속 소녀는 순진해야 한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순진함. 현실은 어떻든 간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며 간절히 바라는 소원은 이뤄진다는 동화를 믿는 순진함, 속은 어리석음. /p132
노인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무표정일 때도 슬퍼 보인다. 어쩔 땐 웃어도 슬퍼 보인다. 홍간난 여사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을 것이다. 속상하고 울고 싶고 누군가 보고 싶어서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절대 그럴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날 때부터 할머니인 것만 같았다. 이 늙은 사람도 한때는 누군가의 아기였고, 어린 동생이었고, 사랑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나도 이렇게 늙어갈 것이다. 절대적으로 늙어갈 것이다. 0.001퍼센트의 예외도 없다. 그러니까 홍간난 여사는 나의 미래다. 예정된 슬픈 미래. 아니다. 아주 운이 좋아야 맞이할 수 있는 미래다. 온갖 불행한 사건사고를 피해 무사히 늙어야만 맞이할 수 있는 미래! /p185~186
두왕리 네 명의 소녀 실종사건 역시 거대하고 치밀한 미스터리 같은 게 아니었다. 따로따로 일어났으면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해프닝이 어쩌다 보니 한꺼번에 일어났고 거대해진 거다. /p337
"꼭 얽힌 실타래 같구먼."
집에 오자마자 이불도 펴지 않은 채 베개만 베고 누운 홍간난 여사가 중얼거렸다.
"실타래라는 게 말이여. 처음부터 얽힌 데를 찾아서 살살 풀어야 하는디, 그냥 막 잡어댕기다 보면 야중에는 죄다 얽혀 갖고는 어디가 얽힌 줄도 모르게 되지 않디? 딱 그짝이란 말이지."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