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처방이 되나요?
최준서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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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커다란 불행에 맞닥뜨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부정한다.  지완도 그랬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빚, 덩그러니 남은 그녀와 어린 남동생.  아니라고, 몹시 나쁜 악몽일 거라고 고개를 내저으며 주저앉아 울었다. /p8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빚, 그리고 고등학생인 동생과 약국이 남겨졌다.  지완은 선택을 해야했지만, 선택이랄것도 없어보이는 상황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길에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잠깐 스치듯 지나간 이강우.  이후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다행이도 목이 좋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김약국을 운영하기로 하고, 열심히 빚을 갚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약국을 운영하며 빚도 갚아가고 남동생이 대학 진학을 하게되면 등록금으로 또 빚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것 같았던 그녀에게 전세집 보증금, 약국의 보증금을 올려야겠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집이야 월세를 낼 수 없으니, 건물주에게 부탁해보고자 찾아갔는데... 바늘구멍 하나 들어가지 않을것 같은 날카로운 남자 이강우.  강우는 지완을 어디선가 마주쳤다는걸 기억하고 그녀를 다시 바라보지만 그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약국을 떠나서 그만한 자리를 다시 잡을 수 없기에 무리하게 재계약을 하지만...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한의원 원장 모자가 그녀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해온다.  돌싱에 마흔이 넘은 뚱뚱한 곽원장.  소문으로도 여성편력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수모까지 당하게 되고...



왜인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너무나 많아서 이야기를 다 하려면 날이 샐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건물주이자 채권자였고, 그녀는 임차인이자 채무자였다.  다시 말해 그와 그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지완은 무례한 사람이 싫었고, 입이 거친 사람도 싫었다.  예의가 없는 사람도, 잘해 줬다가 멀어지는 변덕스러운 사람도 싫었다.  그 모든 것에 그가 있었다.  그녀가 싫어하는 모든 이유 속에... 하지만 남자의 고백에 가슴이 아팠고, 상처받은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p270


복잡한 가정사에 삐딱해진 강우,  그의 부친이 가세가 기울기전에 그들의 이름으로 세웠던 우현빌딩.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행보조차 싫어 길건너 맞은편에 10층짜리 건물을 무리해서 올린 강우는  주변정리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아예 한국으론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건물을 올리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돈을 갚기위해 단기투자로 주식을 하느라 신경은 곤두설대로 곤두서고, 그러던 중 1년전 길에서 마주쳤던 지완을 다시 만나게 된다.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마주한 이들...



사랑이란 씨앗을 가슴에 심으면 곧 싹이 돋아나고, 줄기가 굵어져 곧 가지를 쳐 나간다.  가지는 욕망이 되고, 질투가 되고, 신뢰가 된다.  잘 심어진 씨앗은 따사로운 햇살을 담고 시원한 물을 담뿍 머금어 아름답게 꽃을 피우지만, 대부분은 꽃을 피우다 죽거나 오래되어 죽느다.  그리고 간혹 잘못 심어진 씨앗들은 서로 줄기가 얽혀 다치거나 큰놈이 약한 녀석을 눌러 죽여 버리곤 한다. /p356


"희망이 생기잖아요.  더 따뜻해질 거라는 희망.  손이 꽁꽁 얼어서 펴지지가 않고, 이가 딱딱 부딪히도록 너무 추운데, 햇빛을 머금은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해 봐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우내 너무나 간절히 바랐던 계절이에요.  내게 당신이 그래요." /p433


입만 열면 마음과는 다르게 뾰족한 말들만 나오는 강우, 그런 강우가 조금은 불안하지만 지완은 자신도 그가 신경쓰인다.  경제적으로 엮여서 어쩌면 그에게 마음을 여는데 더 조심스러웠을 지완.   주변인들의 복작복작한 이야기와, 강우와 지완이 얽히며 벌어지는 작은 스캔들,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문턱의 이야기인듯해서 두꺼운 책임에도 책장이 넘어가는게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지완의 심경변화와 강우가 변해가는 모습이 므흣해지게 만들었던 전개,  가족들간의 문제도 잘 풀렸으면 했지만 워낙 오래된 해묵은 감정이니 그의 독백처럼 시간이 필요한 일이겠지.  애정작가님으로 기억해두어도 좋을 최준서 작가님의 <사랑도 처방이 되나요?>  이야기를 잘 풀어가는 작가님이라 재미있게 읽었던 로맨스.  한여름안에서 조금은 선선한 봄바람을 만난 기분으로 읽었던 책이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또 가을도, 겨울도 올 것이다.  지나가면 안 올 것 같아도 계절은 또 돌아오고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혜원의 말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 시간일지 몰라.  어긋난 채로 상처 주고 미워하던 마음을 비워 낼 시간과 서로를 이해할 시간.  잘못된 길로 온 만큼 제대로 길을 찾아 더듬어 오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다.  계절을 몇 번이나 보내야 올까?/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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