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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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출간소식을 기다리는 작가들이 있다.  한동안 책이 출간되지 않으면 생각날때 검색이라도 한번쯤 해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십대 초반, 그의 책을 닥치는대로 그냥 읽었던 것 같다.  그중 기억에 남는 책인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삼십대 후반들어 다시 읽어보았던 상실의 시대는 이십대 초반에 읽었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감상이어서 책을 다시 읽는 다는 것에 대해 새삼스러움을 깨달았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에세이.  sns가 보편화된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리는 많은 이들의 글을 볼 수 있는데 글을 참 잘 쓴다라고 느끼게끔 하는 사람도 많은 요즘이다.  하지만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란건 어떤 생각을하고, 생활을 하고, 집필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직장인들 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테고,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이나 집필에 대한 스트레스도 어마어마 하지 않을까?  특히나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몹시 '둔해빠진' 작업입니다.  거기에 스마트한 요소는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립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하루 종일 단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잘했어, 잘했어"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떡일 뿐입니다.  책이 나왔을 때,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직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인 것입니다. /p24~25


그렇게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육체노동을 하고 빚을 갚는 일로 이십 대를 지새웠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어지간히 일도 많이 했다, 라는 기억밖에 없습니다.  필시 보통 사람의 이십 대는 좀 더 즐거웠을 거라고 상상이 되는데, 나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청춘의 나날을 즐길' 여유 같은 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사는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난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p43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 (이따금 원고지와 오래도록 애용해온 몽블랑 굵은 만년필이 그리워지지만).  그리고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 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p57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에세이는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심작가이기도 하고,  규칙적이고 달리기를 즐기는 작가로도 알려진 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시간가는줄 모르고 빠져 들었던 그의 이야기.  글을 써내려가는 것에 대해서 고통이라고 느껴본적이 없다는 그의 이야기에 솔직히 놀라게 된다.  해마다, 아니 매달 쏟아지는 많은 작가들의 책들.  그리고 그들의 생계는 책의 판매와도 연결지어 지는데, 그는 즐거워서 글을 썼다고 한다.  매일 같이 네시간에서 다섯시간을 책상앞에 앉아 20장씩, 글감이 넘치는 날에도 써지지 않는날에도 무리하지 않고 더 쓰시도 덜 쓰지도 않는 딱 그만큼의 양을 매일같이 똑같이 지킨다는 그의 이야기는 평생을 작가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글쓰는 이들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프리랜서들이 지치기 쉬운 함정이 넘치는 시간과 조율되지 않는 자신의 생활습관이 아닐까?  하지만 평생의 습관으로 배기까지 그의 성격(?)도 뒷받침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하지 못할것 같은... 그런 일이니까.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입니다.  아직 눈이 건강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동안에 이 작업을 똑똑히 해둡니다.  실제로 문장을 써보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순위로 보자면 그건 좀 나중에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p119


한 문장을 수없이 다시 읽으면서 여운을 확인하고 말의 순서를 바꾸고 세세한 표현을 변경하는 등의 '망치질'을 나는 태생적으로 좋아합니다.  교정지가 새까매지고 책상에 늘어놓은 열 자루 정도의 HB 연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볼 때마다 큰 희열을 느낍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런 일이 진짜로 재미있어요.  하염없이 하고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p163~164


삼십오년간 글을 쓰며 느껴온 그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묶어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에 대해,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직업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바탕만으로 본다면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자질은 전혀 없은 사람이지만, 어떤 글이던 읽을 수 있는 조금은 진득한 취미를 책읽기로 가졌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그의 다음 작품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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