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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 누나, 혼저옵서예 - 제주로 간 젊은 작가의 알바학 개론
차영민 지음, 어진선 그림 / 새움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매달 다른 도서로 내가 나에게 선물하는 플라이북 에서 지난해 12월 받았던 <효리누나, 혼저옵서예>. 벌써 2년이 되었지만 그때 갔던 제주도 편의점의 기억이 남달라서, 재미있겠다~ 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꺼내 들었던 책이었다.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 그는 제주도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 이다. 흔히 제주도에서 정착하기가 힘들고 적응하지 못해 꿈을 가지고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그가 제주도 편의점에서 오랜기간 일을 하며 쓴 글들은 생생한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젊은 작가의 필력이 글을 맛깔나게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던건, 어쨌든 매일의 일상인 자신의 이야긴데 읽으면서 지루한지 모르고 책장을 넘겨가고,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편의점이 제주도에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상상하며 읽다보니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휘릭휘릭 빨라지기만 한다. 편의점 알바들이 편해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편하지만은 않은일이구나, 새삼 편의점 알바들이 대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좁은 공간에 진열된 물건들의 가짓수와 행사기간이 되면 해야할 일들 등등...쉬운일이 어디있겠냐마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제일 어렵다는걸...
손님들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는 편의점 알바생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고, 형이고, 오빠고, 친구인 사람이다. 낮은 자세로 손님들을 맞이한다고 해서 함부로 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알바생이 돈 한 푼에 영혼까지 파는 사람으로 보인다면, 자신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보이는 만큼만 보는 법이니까. 몸이 고단하면 하룻밤만 푹 쉬면 금세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다치면 치유까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p164~165
평소 연락이 잘 안 되고 편의점에 소홀한 것처럼 보이는 김 사장이지만, 최소한 그는 매장에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자신의 실수부터 먼저 돌아봤다. 설령 알바생이 큰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문책보다는 다시 잘할 기회를 줬다. 가끔은 지나치게 관대해서 오히려 내가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기에 나도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며 일했다. 물론 월급은 단 한 번도 밀린 적이 없고, 근무시간에 나를 굶게 놔둔 적도 없었다. 당연한 것들이지만, 요즘 이 당연한 것들이 무시되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고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여기저기서 명함을 받는다. 좋게 봐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진짜로 나를 스카우트하고 싶다면, 진심과 신뢰를 보여주길 바란다. 꼭 내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p196
제주도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었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배타성이 훨씬 짙다. 태생이 '육짓것'인 나 같은 사람에게 제주 토박이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 이주민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 살지 못하고 떠났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주도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 이 땅에 오래도록 함께할 사람인 걸 알게 해주는 것뿐이다. /p299
제주 애월즈음에서 장사를 하는 지인이 있어 편의점에서 회를 비롯한 각종 먹거리를 늘어놓고 먹었던 기억이 새롭기도하고 신기해서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었는데, 제주도를 방문하려고 검색하던 사람들이 봤는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해줄 수 있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고 신기하다며 연락을 해왔던 적이 있다. 나도 신기했으니까, 바다가 보이는 편의점에 앉아서 회, 라면, 각종 주전부리와 술 한 잔... 제주도의 밤이라 더 신기하고도 좋았던걸지도 모르겠다. (그 편의점 테라스엔 심지어 작은 풀장도 있었다. 아이들이 들어가 놀 수 있을 만한 정도의!!!)
책장 사이사이 작가의 개구진 사진들도 있고 일러스트도 글과 어울리게 적절해서 글의 경쾌함을 더한다. 그도 제주도 사람이 아닌 타지 사람으로 제주도에 정착하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글을 읽으며 보니 나름의 노력으로 그곳에서의 삶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떠날사람인지 아닌지... 그들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면 이방인이나 다름없으니까... 어디든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낯선곳에서 정착하는건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24시 편의점에서 차 작가가 하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그가 일하는 늦은시간 커피 한 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에 제주도를 가게 되면 그와 편의점에서 라면 한 젓가락이라도 같이 할까? 막연하게 제주도의 삶을 꿈꾸는것보다 여행자로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의 제주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가고싶은 곳이 참 많고, 쉬고 싶은 요즘, 휴식같은 책 한 권을 읽었다.
* 이 책 판매액의 7%(작가 2%+출판사 5%)는 청년 알바생들의 꿈을 지원하는 데 사용됩니다.
자세한 기부 내역은 새움출판사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aeumbook.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