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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 인도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이화경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3월
평점 :

무엇보다 몸이 견딜 수 없이 지치고 피곤하고 아팠다 무엇보다 마음이
굉장히 슬펐다. 그때 누군가 내게 몸 어디가 아프냐고, 마음 어디가 슬프냐고 물어봤다면 목, 그리고 가슴속.... 그리고 심장이라고 말해줬을
텐데, <거미 여인의 키스>에 나오는 몰리나처럼 대답해줬을 텐데. 아무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권투 시합으로 치면
내가 세상과 드잡이하며 싸운 건 겨우 3라운드쯤 되는데, 제대로 한 방을 맞고 나가 떨어지기 전에 그냥 그쯤에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그
시절엔 굴뚝같았다./p018
일상을 뒤로 하고 먼 곳에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삶을, 용기있게 결단 내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시작글에서 읽은 저자의 심경이 공감되서 였을까? 아니면 책의 제목 때문이었을까? 한 번에 쉼없이
읽어내기엔 조금 벅찬 에세이였던것 같다. '인도'라는 곳을 여행지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가끔 글로 읽게 되는 그 곳의 이야기들은
비슷했던것 같다. 자유롭게 여행하기엔 조금은 벅찬곳. 하지만 일상을 떠나 있기엔 이만한 곳도 없다는.... 현지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2년동안 인도에 한국어 교사로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살며 자신을 들여다 보았던 그녀는 인도에서 어떤 것들을 보고 느꼈을까? 이화경 저자의
<꾼>을 읽을때도 조금 난해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는데.... 에세이도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 저자가 본 풍경들, 느낀점, 심경 등이 녹아든 글과 사진들은 때론 너무도 묵직해서 한 페이지도 넘기기
힘들었고 글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읽기도 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가벼웠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개인적인 취향도 좀 있었다.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이야기하다 보니 좀.... 무거워진 느낌이랄까? 제목만큼이나 진지하게 읽어야 할 듯한 글로 느껴졌다.
누군가 말했다. 여행이란 익숙한 조건에서 낯선 조건 속으로 존재를 밀어
넣는 일, 그래서 존재 앓기를 하는 일이라고, 익숙하던 일상이 불현듯 뜯겨져 나가는 것, 예측 불가능한 순간과 매번 정면 대결하는 것,
갑작스런 풍경이 솥뚜껑 속 닭이 살아 튀어나오듯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여행. 선 채로 오지 않는 기차를 밤새 기다리는
것, 매혹적인 불안을 즐기는 것, 낯선 세상의 무례를 겸허히 견디는 것, 이별을 즐기는 것,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 잘 자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는 것, 미워한 사람들이 무지무지 애틋해지는 것, 신문에 어떤 기사가 났는지 알 수 없는 것,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는 것을 아는 것, 예전과 생판 달라진 나를 만나는것,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이다. / 오래 버티는 희망도 없지만 끝까지 가는 불행도 없다 p252
시작하는글과, 마무리 하는글에 가장 많이 공감하고 몇 번이고 읽었던 구절 이었던것 같다.
여행은 개개인의 취향과 감성, 여행지의 사정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일텐데... 그리고 현실에 처한 자신의 상황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인데.... 지금의 내 상황을 너무 겹쳐 생각하고 싶었던건 아닌지 그래서 인도에서의 글을 내가 관심있어 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조금은
미루어두고 생각하고 싶었던건 아닌지....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삶의 힘든 순간을 궂이 버티려고만 하지말고 조금 떨어져 보는건
어떨까? 여행이 주는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닐까? 힘든 순간을 버텨 넘겨낼 수 있는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유연하게 현실을 잠시 떠나보는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시를 읽는 듯한 한 편의 에세이를 읽은듯 했다.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창밖엔 봄이 완연하고 나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에 다음 책을 고르러 떠나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오래 버티는 희망도 없지만 끝까지 가는 불행도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여기서 살다가 수틀리면 떠날 수 있는 저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것을.
여행은 남는 장사라는 것을.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을....

